공연 타이틀은 ‘한여름 밤의 마포가족음악회’. 주최는 마포구.
여기까지만 들으면 경음악이나 가곡, 어머니회 합창단 등으로 이뤄진 다소 ‘고리타분한’ 음악회를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날 음악회는 달랐다. 이상은, 강산에, 언니네이발관, 불독맨션 등 내로라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무대를 뜨겁게 달궜고, 관객들은 3시간 반 동안 이어진 공연 내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열광했다.
“2002년 월드컵 때 자치구에서 열린 문화행사 76개를 모니터했어요. 76개가 다 똑같더군요. 그 동네 어머니회 합창단, 소년소녀 합창단에 사물놀이, 한물간 가수가 두어 명 옵디다.”
이번 ‘한여름 밤의 마포가족음악회’를 기획한 문화기획가 류재현씨(39)는 “지역축제는 그 지역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 특히 마포구는 홍익대 앞 거리문화라는 창조적인 지역 문화가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까지는 구청 주최 축제를 주관할 기획사 공모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류씨는 올해 직접 기획안을 만들어 응모했다. 장발의 인디밴드가 참여하는 구청 주최 음악회 기획안을 공무원들이 받아들여 줄지 그도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마포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강조한 그의 기획안은 13건의 경쟁자들을 제쳤다.
“고맙기도 하고, 우리나라 공무원들 생각이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포구가 멍석을 깔아준다는 소식에 홍익대 앞 뮤지션들도 호응했다. 서교동 주민인 가수 이상은씨가 MC를 자청했고, ‘허클베리 핀’의 드러머 김윤태씨가 포스터와 팸플릿을 디자인했다.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학생들로 구성된 ‘거리미술전 기획단’이 행사 도우미로 나서 사진촬영과 행사진행, 안내를 맡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이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세심히 구성하고 참가 밴드도 선별했다. 관청에서 보낸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세련된 디자인의 초청장을 2000부 만들어 지역주민 대표들에게 돌렸다.
“주민들이 자기 동네의 문화를 즐기며 지역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는 행사가 되길 바랐어요. 영국 리버풀 주민들이 비틀스를 자랑스러워하듯 말이죠.”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0대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좌석 4000석을 가득 메웠고, 서서 보는 관객도 있었다.
류씨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CF감독으로 활동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서울 마케팅 방안을 연구하던 중 태동기이던 홍익대 앞 거리문화에 빠지게 됐다. 지금은 지역 명물이 된 홍익대 앞 ‘클럽 데이’도 연구원 시절 그가 기획한 것.
류씨는 현재 ㈜상상공장(想像工匠)을 운영한다. ‘문화벤처회사’ 운영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입증해 보이는 게 그의 꿈이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