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우리동네가 최고/인천 중구 율목동

  • 입력 2004년 8월 23일 21시 01분


해방후 부자들이 몰려와 기왓집을 짓고 살았다 해서 ‘부자 마을’로 유명했던 인천 중구 율목동. 지금은 주민수 5000여명의 비교적 작은 동네지만, 곳곳에 인천 지역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문화 향취 가득한 마을이다.

특히 율목동 주민들이 자랑하는 곳은 인천 지역 최초의 도서관인 인천시립도서관이다.

1921년 중구 송학동에 개관했다가 해방 이듬해 율목동으로 이전한 이 도서관은 책이 귀하던 시절 인천 지역 지식인들의 활자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보고’(寶庫)로 여겨졌었다. 건물 규모는 554평에 보유 장서도 15만 여권에 불과하지만 오랜 연륜에 걸맞은 도서들이 보관돼 있다. 특히 1933년 발간된 ‘인천부사(仁川府史)’와 ‘개항과 양관역정(洋館歷程·1959)’등은 국내 대표적인 희귀본으로 평가된다. 도서관 이용객도 대학입학을 준비하는 수험생에서부터 희귀문헌을 공부하는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가 선용과 평생교육을 원하는 주민들의 발길도 잦다.

요즘 온 가족이 함께 매주 토, 일요일 오후 도서관을 찾아 시청각실에서 무료 영화를 감상하는 주부 김영미씨(39)는 “영화 감상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독후감 공모대회가 열리고, 무료 교양강좌도 많아 자녀교육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동네에는 또 한국전쟁 당시 부상자 치료를 위해 설립된 ‘인천기독병원(율목동 237)’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이 병원은 혼자 사는 노인과 장애인 등 생활형편이 어려운 주민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 부근에 있는 30여평 남짓한 한옥은 1929년 국내 최초의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창안한 박두성(朴斗星·1888∼1963)선생의 생가. 이 곳에서 20m 떨어진 공터에는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나 아쉽게도 현재 방치된 상태.

옛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주민들은 최근 “선생의 생가를 매입해 인천의 문화적 유산으로 보존하고 교육현장으로 활용하자”고 복원사업을 건의, 현재 중구가 매입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동네 노인회에서는 반상회나 문화행사가 열릴 때 마다 율목동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주민들에게 설명을 해준다.

율목동 주민자치위원장인 심영섭씨(57)는 “옛날에 밤나무가 많이 자라 율목동(栗木洞)이라고 이름 붙여진 우리 마을은 곳곳에 인천의 근대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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