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탄 이원규씨(44)가 ‘한국 시의 고향의식 연구’라는 논문으로 국문학 박사학위 증서를 수여받자 장내 곳곳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씨는 1999년부터 극심한 근육통을 유발하는 루게릭병과 싸워 왔다. 루게릭병은 세계적 천문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걸려 널리 알려진 병으로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돼 언어장애, 폐렴 등의 증세를 보이다 사망에 이르는 난치병이다.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1999년 돌연 루게릭병을 선고받은 이씨는 병에 굴복하지 않고 이듬해 9월 성균관대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논문 준비 단계만 해도 컴퓨터 자판을 자유롭게 칠 수 있었지만 마무리 단계에서는 온몸의 마비증세로 오른손 중지 한 손가락만을 사용했다.
이씨는 “비장애인들이 10분이면 칠 수 있는 분량을 한 손가락만을 사용해 치려니 3시간 정도 걸렸다”며 “두 발을 이용해 책장을 넘기는 등 힘든 시간이었지만 하고 싶었던 국문학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박사학위 취득으로 성균관대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방송통신대 등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등 모두 7개의 학위를 갖게 됐다.
발병 이후 이씨의 수족을 대신한 부인 이희엽씨(41)도 “극심한 근육통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까지 논문을 마무리한 남편이 자랑스럽다”며 “남편이 꼭 완치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규씨도 “아내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한다”며 “이번 논문작업도 아내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이원규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민간기관인 ‘한국루게릭병연구소’(www.alsfree.org) 소장을 맡아 국내에 루게릭병을 알리는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의료과학기기 등의 도움을 받아 저술활동과 강의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씨는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며 부인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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