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의 집은 지난해 말부터 계속 전기 공급과 차단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 다행히 한국전력공사가 혹서기인 7, 8월에는 전기공급을 끊지 않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지역인 성북구 하월곡3동 산2 일대도 단전 단수 위협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공공근로 사업으로 하루에 2만원 남짓한 돈을 벌고 있는 박모씨(48)는 “매달 10만원씩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수도료와 전기료까지 몇 달씩 밀려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스비나 전기료, 수도료 등 필수요금은 끊기기 직전까지 최대한 연체한 뒤 몇 달에 한 번씩 내서 이어가는 ‘돌려막기’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혹한기 단전유예기간(지난해 12월∼올해 1월)이 끝난 2월 전남 목포시 연산동에서는 체납된 전기료 9만원을 내지 못해 단전되는 바람에 장애인 부부가 촛불을 켜고 잠자다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전기료와 수도료 등 공과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해 단전 단수를 걱정하며 사는 빈곤층이 늘어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100가구 중 7가구가 전기료를 내지 못하고 있고 상수도 연체율 또한 사상 최대에 이르렀다.
1일 한전이 열린우리당 최철국(崔喆國) 의원에게 제출한 단전현황 자료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전국에서 전기세를 연체하고 있는 가구는 89만3272가구. 이는 사상 최대 수치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2월 58만6614가구에 비해 1.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9월부터는 3개월 이상 연체가구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단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전기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6월 말 현재 서울과 부산 지역의 상수도 요금 연체율도 각각 5.14%와 3.59%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대구 인천 울산 등 다른 주요 도시의 상수도 요금 연체율도 각각 3.6%, 3.7%, 2.2%로 모두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허선 교수는 “수도나 전기요금마저 낼 수 없는 극빈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누적된 불황 여파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단전 단수된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어 어른들은 노숙자로, 아이들은 보육원이나 위탁시설로 보내지는 ‘가족해체’로 이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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