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그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리한 법 적용을 경계하는 판단을 내놓으면서도 국보법 자체의 필요성을 인정해왔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이번 판결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헌법적·법률적 판단 수준을 넘어 정치권에 강한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치권을 겨냥한 듯한 사법부의 첫 메시지는 8월 26일 헌재의 국보법 7조 찬양·고무죄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나왔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보법을 형법으로 대체하자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을 의식한 듯 “평화시대를 기조로 한 형법은 우리가 처한 국가의 자기안전·방어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판례를 원용해 “국보법은 형법상 내란죄 등 규정의 존재와는 별도로 독자적 존재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결정문 외에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입법부가 헌재의 결정과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 입법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보다 한층 적극적이고 직설적인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기소된 구체적 사안의 사실관계를 밝힌 뒤 해당 법조항에 근거해 유·무죄 여부를 판시하던 종래와는 달리 이례적으로 국보법 개폐 논란까지 직접 언급하며 반박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대법원은 정치권이 형법상 내란죄나 간첩죄 등의 규정만으로도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논리로 국보법 폐지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한 뒤 “스스로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조치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며, 국가 안보에는 한 치의 허술함이나 안이한 판단을 허용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중견 판사는 “국보법은 국가의 안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만큼이나 중요한데도 마치 반개혁적이고 사라져야할 구법으로만 여겨지는 데 대해 법적·논리적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해석했다.
이번 판결은 정치권은 물론 정치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온 법무부와 검찰에도 대응논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모든 나라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을 방어하는 법적 시스템을 갖고 있다”며 국보법 존치 쪽에 무게를 실으면서 “국회에서 논의될 때 우리 의견을 내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국가보안법에 대한 기관별 판단 | |||
판단기관(날짜) | 사건 내용 | 해당 조항 | 결과 및 이유 |
국가인권위원회 (2004.8.24) | 국보법 전면 폐지,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 | 국보법 전체 | -법률의 자의적 적용 위험성 및 규정 자체 미비로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 -기존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다 |
헌법재판소 (2004.8.26) | 2003년 8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가 항소심 재판 과정에 위헌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같은 해 12월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 | 국보법 7조 1, 5항 | 합헌 -법률개정으로 확대해석 위험 없다 -법 자체 문제가 아니라 운용의 문제다 |
대법원 (2004. 9.2) |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 등 한총련 대의원 2명에 대한 상고심 사건 | 국보법 7조 1, 5항 등 | -각각 징역 2년6월 실형 확정 -북한 적화노선 유지로 체제전복 위협 상존 -국보법 폐지는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인 만큼 신중해야 |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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