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에커트 박사 “친일파 정의 자체가 매우 불명확”

  • 입력 2004년 9월 7일 18시 38분


이화여대 명예석학교수 위촉 기념강연차 한국을 방문한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 카터 에커트 박사(59·사진)는 7일 “친일파 청산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조상의 친일행적에 대해 후손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에커트 박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친일파라는 명명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도식적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친일파라는 정의 자체가 매우 불명확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광의로 해석하면 일제강점기 돈을 벌거나 대학교육을 받는 등 당시 조금이나마 혜택을 누렸던 사람들 전부 친일파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친일파를 도매금으로 다루기보다는 과거 문헌과 기록 등을 통해 개인별, 상황별 친일행적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에커트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등에서 행해진 나치 부역행위 처벌에서도 후손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강조한 뒤 “선대의 친일행적에 대해 후손에게 죗값을 치르라는 것이 마땅한 일이냐”고 되물었다.

에커트 박사는 친일 청산 방법과 관련해 “한국인들이 과거사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과 논의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며 문서 고증을 통해 친일행적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1960, 70년대 한국 정치·경제의 불균형 발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눈부신 경제발전과 정치탄압이 공존했다”며 “이런 모순의 역사를 푸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과제지만 아직 자유롭게 평가할 만한 때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에커트 박사는 또 “역설적으로 유신정권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운 셈”이라며 “다른 나라에서는 법제도를 통해 민주주의가 성장했지만 한국은 길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역사를 전공한 뒤 평화봉사단원으로 1969∼77년 한국에 머물렀다. 그는 “한국 근대화의 격변기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에서 열린 특별강연회에서 “고구려사는 한국 역사라고 생각하며,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근래 정치적인 의도에서 고구려사가 다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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