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과 더불어 교통사고 발생도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 자동차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교통사고만큼 골치 아픈 문제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교통사고는 연간 24만여건에 이르며 하루 600∼700건꼴로 일어난다.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교통사고 왕국’이라는 오명을 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교통사고는 내가 매일 직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로교통사고 감정사’라는 직업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아직 정착되지 않은 직업이다. 나는 ‘도로교통사고 감정사’라는 직업을 교통사고 분쟁의 ‘평화유지군’이라고 부르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동차 사고가 나면 우선 보험회사에 연락하고는 ‘보험회사가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 놓고 있다가 제대로 된 조치 한번 취하지 못하고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자동차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도 보험금 지급 대상이 되는지조차 알지 못해 보험회사에 사고 접수도 하지 않고 혼자 손해를 몽땅 감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감정사’는 교통사고 발생시부터 보험금 지급까지의 전 과정을 운전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도로교통사고 감정사가 되기 전에 나는 농수산물 유통업에 종사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발에 8%의 영구장애가 남게 됐다. 8%라고 하면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에게 이 사고의 의미는 컸다. 약간의 흉터를 제외하고 외형적으로는 거의 멀쩡한 상태였지만 육체를 사용하는 소득발생(육체노동)에는 치명적인 장애였기 때문이다. 이 사고는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숱한 고민 끝에 나는 교통사고와 ‘인연’을 맺기로 결심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해서 도로교통사고 감정사 자격증을 땄다. 공부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우선 내 사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나를 친 오토바이가 뺑소니였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이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모든 치료비를 혼자 감당했다. 그러나 내가 가입한 자동차보험에서도 이 사고가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보험회사에서 뒤늦게나마 정상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뒤 많은 자동차 운전자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험에 대해 너무나 모르며 이 무지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올해 나는 또 한번의 도전을 감행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자동차보험관련 손해사정사 자격시험을 본 것이다. 나의 8% 장애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80%의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약력▼
1959년 제주 출생으로 1985년부터 2년간 사북 탄광에서 일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고, 현재 청담 손해사정사무소 근무 중.
김동훈 도로교통사고 감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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