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고 출신들이 경기도 어디에서 동창모임을 갖다가 현지 사람들에게서 듣고 기겁했다는 말이다. 일류와 명문이 멸종돼 가는 한국 땅 풍속도의 한 장면이다. 서울의 명문대들도 곧 이 신세가 될 것이다.
2008년부터 시행될 수능 9등급제에서는 1등부터 5만등까지 성적이 똑같아지리라고 한다. 이에 일부 대학에서 학생 선발에 어떻게든 변별력을 확보하려 하자 교육부가 이를 금지하겠다고 미리 못을 박았다. 본고사는 절대 안 된다. 수능성적 평균이 120점짜리 학교나 350점짜리 학교나 내신을 차별하는 것도 안 된다. 우수한 학생 뽑겠다는 대학을 극구 막는 나라이니 자식에게 ‘우등생 되지 마라’고 야단치는 부모와 똑같다.
▼일류가 멸종돼가는 한국사회▼
일류나 명문은 오늘날 기득권 수구집단으로 매도당한다. 그러나 어느 세상이건 자식을 일류로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스승의 노래처럼 우리는 아이들에게 ‘잘되거라’라고 가르쳐 왔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좋은 데 취직하고, 더 좋은 친구와 사귀고, 성공하는 가정을 이루라고 가르친 것이다. 본시 교육하는 목적 자체가 더 나은 사람을 만들어 개인도 잘되고 국가사회에도 이바지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국가가 잘나가는 국민의 꼴을 못 본다. 그들과 경쟁하면 약자가 탈락하니 모두 같아지자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변별과 석차를 없애면 무엇으로 교육의 성취를 가늠할 것인가. 출석을 하건 말건, 시험성적이 여하하건 필자가 모두 A학점을 주면 공부할 학생은 없다. 시험, 경쟁과 도전을 피하고 살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그렇게 길러진 국민이 장차 어떤 경쟁력을 가질 것인가. 개방체제를 선택한 우리는 북한처럼 ‘저희 방식’을 고수하며 없는 대로 나누고 살 형편도 못된다. 남 같은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다른 국민의 시중이나 들며 모멸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평준화는 정의사회로 가는 길인가? 이 세상에는 날 때부터 프리미엄을 받고 출발하는 사람이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 성취의 90%는 아마도 극기(克己)의 정성과 노력으로 이뤄질 것이다. 과거 우리는 남의 탓보다 자조정신을 강조했다. ‘부자도 태만의 근원이 되고 초년고생도 귀중한 자본이 된다. 신세타령 하지 말고 이류대학에 들어왔으면 두 배 더 공부해라.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두 배 더 일해라.’ 이런 정신이 40년 전의 황무지에서 오늘의 한국을 일군 힘이 됐을 것이다.
이제 국가가 나서 너희는 기득권 사회구조의 피해자임을 주입한다. 태생적 조건이 불평등하니 강자와 경쟁할 필요 없고 정권만 믿으라고 한다. 그러나 좋은 자리는 언제나 부족하고 실력 없는 자가 먼저 탈락함이 상식적 사회의 이치다. 노력과 단련의 어려움 대신 ‘남 탓하기’만 가르쳐 놓고 정권이 과연 그 뒤를 영원히 봐줄 수 있을까. 지난 DJ 정권이 경기 살려주겠다며 양산한 신용불량자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가.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 무책임이고 약 대신 독을 주는 것이다.
▼3류끼리 모여 선진국될까▼
경기여고나 서울대가 저희만 잘난 양 재고 행세하는 것은 분명 봐주기 어렵다. 그러나 일등 학벌이 없어지면 2등, 3등이 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현실세계다. 모두 똑같이 살자는 사회주의는 모두 꼴찌가 되지 않는 한 완성될 수 없었기에 실패한 실험이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TV에 나와 “이대로 한 5년, 10년 지나면 한국이 미국과 대등한 자주국가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미국에는 얼마나 많은 명문 일류가 존재하는가. 3류끼리 모여 문명 선진국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의 대학 기업 정부에 명문과 일류를 수없이 번창시킨다면 보통 사람이 일류될 기회도 늘어나고 명문의 콧대도 별것 아닌 게 될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약자의 몫과 기회가 강자보다 더 커진다는 것 또한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몇 개 안 남은 명문마저 모두 짓밟고 있다. 후세(後世)는 쓰레기만 물려받을 것이고, 그 원망은 이 시대 국민 모두가 받아야 할 것이다.
김영봉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경제학 kimyb@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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