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결혼한 최모씨(29·여·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첫아들 낳는 법’. 주변에서 ‘아들’ 소리만 들려도 귀가 쫑긋해진다.
“양육비 걱정 때문에 아이를 딱 한 명만 갖기로 했는데 남편이 종손이거든요. 시댁에서는 첫째가 딸이라도 또 낳으면 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경제사정으로는 어림없어요.”
최씨는 “반드시 첫 번째에 아들을 낳아야 한다”며 “한의원을 찾아가 상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 결혼한 김모씨(25·여) 역시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아이를 둘 이상 낳을 생각은 없지만 만일 첫아이가 딸일 경우 둘째를 가질 때 부담이 클 것 같기 때문.
김씨는 “내가 자녀 성별을 가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은근히 아들을 바라는 듯한 어른들을 생각하면 아들을 낳고 빨리 부담을 덜고 싶다”고 털어놨다.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젊은 주부들을 중심으로 ‘아들 골라 낳기’ 붐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중반 정상수치에 근접했던 신생아의 남녀 성비(性比)도 다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성비, 왜 반등했나=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은 셋째는 물론 둘째아이의 성비가 눈에 띄게 상승하는 지역이 늘어났다는 것.
특히 서울 지역 둘째아이의 성비는 1997년 104.4로 최저를 기록했다가 이후 5년 동안 상승해 지난해 108.7을 기록했다.
이는 경제적 부담을 우려한 가정에서 과거 셋째 이후 자녀에 대해 행했던 성 감별과 선택 임신을 둘째 자녀 단계에서도 행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남아선호’ 현상은 아들을 볼 때까지 출산하는 경향이 있어 출산율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외환위기라는 변수가 ‘성비 상승’과 ‘출산율 저하’라는 상충되는 개념을 결합시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남아선호 아직도 심각=본보 분석 결과 ‘용띠 범띠 말띠 여아가 태어날 경우 기가 드세다’는 속설에 따라 성비가 춤을 추는 현상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각각 용띠 범띠 말띠 해에 해당하는 1998, 2000, 2002년의 성비는 인접년도에 비해 1∼1.9씩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인구학자 조남훈(趙南勳) 박사는 “지난해 전체 성비는 다소 조정국면을 보였는데 이는 부모들이 2002년 말띠 해에 낳았던 여아의 출생신고를 미뤘다가 2003년에 한꺼번에 몰아서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남아선호 사상은 20, 30대의 젊은 부부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경북 경주시 위덕대 장덕희 교수(사회복지학부)가 경북 지역의 젊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4%가 ‘아들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첫아이로 딸을 낳은 경우 남성의 64%, 여성의 72%가 둘째아이는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
신순철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과장은 “성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은 아들이 여러모로 우선순위를 갖는 게 많은 시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최근 태아 성 감별에 대한 처벌이 느슨해진 것도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아들 낳는 법 알려 주세요”=‘장손이라 시댁에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는데요, 언제쯤 관계를 가져야만 아들을 낳을 수 있을까요? 궁금합니다.’(이모씨·29)
‘상담료는 30만원입니다. 한번 내면 임신할 때까지 유효합니다. (중략)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이 30만원의 가치는 되지 않겠습니까.’(관리자)
아들딸을 골라서 낳을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모 인터넷 사이트 상담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골라서 낳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게시판에 있는 상담 내용은 대부분 ‘아들을 낳고 싶다’는 것.
1994년 태아 성 감별이 불법화된 이후 최근 들어 원하는 성의 아이를 ‘골라’ 임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젊은 부부들이 늘고 있다. 아들을 임신할 수 있다는 기간을 검색해 주는 사이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딸 둘 정도 둔 30대 중반 여성의 상담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들 하나만 낳고 치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신혼 여성이 많다”고 귀띔했다.
한의원이나 산부인과를 찾아 아들 임신법을 물어보는 젊은 여성도 많다. 얼마 전에는 임산부 관련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른바 ‘아들 낳는 약’으로 둔갑한 일본산 칼슘 보조제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서울선 강남구 압도적 ‘男超’▼
지난해 한국의 지역별 ‘남아선호’ 현상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본보가 지난달 공개된 통계청의 ‘2003년 출생·사망통계 결과’를 셋째아이 이후 신생아를 중심으로 재분석한 결과 남녀 성비 불균형에서 수도권 등에 비해 경상도가, 군 지역에 비해 도시가 더욱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도별 분석=지난해 전국에서 셋째아이 이후 신생아의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했던 곳은 대구. 여아를 100으로 했을 때 남아의 비율이 무려 186.6으로 전국 평균인 136.6보다 50이나 높았다. 이어 울산이 167.2, 경북이 164.6이었다.
성비가 가장 균형을 이룬 곳은 인천으로 121.9였다. 이어 서울이 123.6, 경기가 129.5로 수도권의 경우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서울은 구별로 보면 강남구가 193.6으로 다른 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영등포구(151.5) 성동구(150) 양천구(144.1) 송파구(137.7)가 비교적 높았다. 서초구는 셋째아이 이후 신생아의 경우 112.4에 머물렀지만 둘째아이의 경우는 2000년 104.7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지난해 117.9에 달했다.
이에 대해 김승권(金勝權)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은 “서울에서 강남구의 성비 불균형이 가장 높은 것은 딸만 가진 부유층 부부들을 중심으로 최근 늦둥이 출산 붐이 일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군구별 분석=전국 234개 시군구를 분석한 결과 시 지역의 셋째아이 이후 신생아의 평균 성비는 138.5로 군 지역의 124.2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는 도시 지역이 남아 선별 출산을 위한 환경과 의료수준이 높은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반면 전체 출생아 중 셋째아이 이후 신생아의 비율은 도시(8.9%)보다 군 지역(15.4%)이 높아 다산(多産) 가정은 군 지역에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셋째아이를 출산하는 산모의 연령은 30∼34세가 52.4%로 가장 많고 35∼39세(22.9%), 25∼29세(18.7%) 순이었다. 다만 서울 지역은 35∼39세의 비율이 27.1%로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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