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결정이 단단히 대가를 치르는 사례가 누적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비로소 ‘사회적 숙의’ 장치들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토론이다. 토론은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견해 차이를 좁히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숙의 과정에는 여전히 감성의 권세가 드높다.
지난여름 필자는 한 대학생 토론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올해의 논제는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건설’이었다. 원전 관련 이슈는 과학과 이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토론회는 감성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찬성측은 과학과 기술이라는 탄탄한 증거에 바탕을 둔 논리 우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을 주도하지 못하는 듯했다.
최근 일본 미하마 원전 사고나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이 반대측에는 훌륭한 논거로 활용됐다. 감성이 강한 반대측 주장에 비하면 찬성측 반박 논리는 궁색해 보였다. 이성의 영역에 감성이 간섭하고 들어오면 대체로 감성이 압도해 버리는 것이다.
이성은 논리가 핵심이라면 감성은 포장이 핵심이다. 논리의 생명은 일관성이기 때문에 이성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시간을 두고 신뢰를 쌓아야 하는 지루한 작업이다. 반면 감성은 단시간에 설득을 이뤄낼 뿐만 아니라 구전을 통해 넓고 빠르게 확산되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님비(NIMBY)’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감성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토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토론 전체 흐름을 무시하고 각자 편한 시점에 끼어들어서 한마디씩 던지고 빠진다. 말장난이 핵심을 흐려 버린다. 문제의 본질은 접어둔 채 어휘 하나, 표현 하나를 놓고 인신공격이 쏟아진다. 합리적인 대안보다는 감성적 대립과 경쟁이 반복되면서 입장 차만 뚜렷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TV 토론은 몇몇 걸출한 언어술사들의 경연장이 되면서 이성이 자랄 틈을 좁혀 버렸다. 사회적 숙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이 너무 고달픈 것이다.
이번 토론대회에 참여하면서 원전수거물 관리사업의 예비신청 기한이 9월 15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예비신청은 주민의 의사를 고려해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니 곳곳에서 많은 토론이 이뤄졌거나 이뤄질 것이다. 행여나 이 토론이 감성에 압도되어 본질을 흐릴까 걱정된다. 기한 종료 이후도 걱정이다. 사업 추진 방향이 도출되면 그나마 토론마저 중단되고 갈등이 증폭될까 우려되는 것이다.
원전수거물 관리사업은 국가 중대사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토론은 사업의 진행 방향과 관계없이 지속돼야 한다. 비단 원전 정책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갈등 이슈들이 이성적 토론을 통해 해법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김현주 광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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