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추기경 “국보법폐지 반대”- 法長스님 “국민의견 들어야”

  • 입력 2004년 9월 13일 18시 20분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왼쪽)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해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법장 스님은 이날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했으며 이 의장은 “속도조절을 하겠다”고 답했다.-국회사진기자단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왼쪽)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해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법장 스님은 이날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했으며 이 의장은 “속도조절을 하겠다”고 답했다.-국회사진기자단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13일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과 관련해 “개정할 필요가 있으나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국보법 폐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추기경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주교관에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예방을 받고 40여분간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을 아직 믿을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김 추기경은 “북한이 원하는 게 남남분열이 아닌가. 이렇게 갈 경우 국민을 갈라놓는 것이 너무 우려된다”며 “요즘 나라를 위해 (이전보다) 기도를 훨씬 더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추기경은 이어 자신이 ‘국보법 폐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 고문직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얼마 전 젊은 신부들이 국보법 폐지에 힘이 돼 달라고 할 때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며 “명단에 고문으로 넣겠다고 했을 때 빼라고 했는데 의지와 달리 그대로 뒀다. 조만간 적절한 기회에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오른쪽)은 13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주교관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예방을 받고 우리 사회의 분열과 편가르기 현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국회사진기자단

김 추기경은 이날 “국보법 개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폐지는 힘든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한 뒤 “지금 상황을 볼 때 하느님 도움 없이는 안 될 상황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박 대표는 “국보법이 국민들 사이에 큰 걱정이 되고 있다. 추기경님의 뜻을 잘 전하겠다”고 말했고, 김 추기경은 “야당만이 아니고 여당이 먼저 (힘을) 합해서,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믿고 편안히 살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法長) 스님은 이날 조계사를 방문한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에게 “국민이 가장 편리하고 안정될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개정해야 한다”고 국보법 폐지 움직임에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 의장이 “유엔과 미국 국무부 등에서도 국보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법장 스님은 “세계인이 전부 뭐라고 말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분단의 설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권 차원에서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고 반박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法長스님 “국보법 폐지, 대중이 부정하는데 왜 고집하는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많은 대중이 부정하고 있으면 좋은 것이 못 된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法長) 스님은 13일 국가보안법 폐지 결정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에게 쓴 소리를 많이 했다.

이 의장은 “사상 이론 법 같은 것은 현실이 바뀌고 나서 한참 뒤에 변한다는 철학자 헤겔의 명제가 이해가 된다”면서 “국제사회가 데탕트라고 변했는데 한반도는 뒤늦게 그런 현실을 겪고 법이 마지막으로 변하는데 갈등이 있는 것 같다”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법장 원장은 “철학자 말을 했으니 부처님 말씀으로 답하겠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고, 오늘이라는 현재는 내일의 과거라는 말씀이 있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라고 맞받았다.

이 의장이 “유엔과 미국 국무부 등에서도 국보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법장 원장은 “세계인이 전부 뭐라고 말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분단과 설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권차원에서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며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지만 한국의 실상과 현실에 맞는 한국식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법장 원장은 또 “칼이 있는데 과일을 깎으면 과도가 되고 식당에서 쓰면 식도고 살인에 쓰면 식칼이 된다”면서 “도구는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지금은 과거처럼 인권유린에 (국보법을) 안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의장이 “그동안 공안업무 담당자들을 만나면서 폐지와 그에 따른 충분한 보완방침을 밝혔더니 폐지 방침에 동감하더라”고 소개하자, 법장 원장은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장치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의장이 국보법 폐지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 데 대해서도 법장 원장은 반론을 폈다. 법장 원장은 “신기남 의장 일을 보고 굉장히 불안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과거 아버지가 뭘 했던지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면서 “당원들이 당 의장 내놓으라고 하니 이것은 과거가 현재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아무리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해가) 드러난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이에 이 의장은 “당사자나 언론기관의 도덕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법장 원장은 “도덕을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도덕을 찾고 높이느냐. 이런 상황에서 도덕 예의를 찾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법장 원장은 이 의장의 경제 양극화 현상 지적에 대해 “돈 있는 사람도 남지 않으면 투자를 하지 않는 법이다. 옛말에 수청즉무어(水淸則無魚)라는 말이 있는데 어느 정도 물이 흐려야 고기가 있다는 뜻”이라며 “이득이 있어야 투자를 하고 재미가 있어야 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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