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학생들 어디로 갔나]취업 성차별 나아졌지만…

  • 입력 2004년 9월 14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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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보고서는 당시 여성들이 취업과정에서 겪었던 성차별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1997년 당시 LG종합기술원 책임연구원이던 백은옥씨(41)는 1990년대 중반 교수직에 지원할 때 면접에서 “아이가 어린데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느냐, 여교수가 남학생을 잘 지도할 수 있느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교수직에 지원할 때는 무난히 합격해 서울시립대 기계정보공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교수였던 이은영 의원(52·열린우리당) 역시 2년 만의 독일 법학박사 취득 기록을 세우고 교수직에 지원할 때 들었던 얘기가 “어떻게 남학생을 가르치는 법대 교수가 되느냐”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같은 서클에 있었던 남편은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취직이 됐다”며 “취직 가망이 없어 결혼이나 해야지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1977년 귀국한 그는 1980년에야 한국외국어대 법대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1990년대에 서울대 법대 교수직에 지원했다가 ‘유리천장’을 느끼고 단념했다. 그러나 그런 서울대 법대도 변했다.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양현아씨(44)를 ‘법여성학’ 담당교수로 임용한 데 이어 올해 새로 두 명을 채용해 7월 현재 법대 교수 40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최근에는 여성이 서울대 최연소 교수에 임용돼 이달부터 강단에 서고 있다. 공대 기계항공공학부 조교수 김현진씨(29)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대 공대 최초의 여교수인 박순자 명예교수(71)가 1998년 정년퇴임한 지 6년 만이다. 그 사이 2002년 전기컴퓨터공학부에 전화숙씨(44)가 들어온 것이 여교수의 전부였다.

그러나 백 교수는 “임용 자체도 그렇지만 보직 여교수의 비율이 여교수 수에 비해 낮다는 것은 여전히 차별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말부터 성차별이 적다는 각종 고시와 공무원시험에 여성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합격자 2830명 중 여성은 1136명으로 40%를 웃돌았다. 여성 법조인은 현재 모두 809명으로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 취업과정에서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 보고서에 등장했던 서울대 어문계 출신 최모씨(42)는 교사를 하다 한 유명 광고기획사로 자리를 옮겨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그는 “결혼을 하면 여사원들은 매년 재계약을 하고 신분보장이 안 됐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그는 결혼 후 뒤늦게 사법시험에 도전해 현재 지방법원 판사로 일하고 있다.

실제로 1980년대 말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되면서 채용과정에서 여성에게 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업마다 ‘교묘한 탈락 작업’이 존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서류전형이나 시험성적만 보면 여성만 뽑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결혼과 함께 예전의 근무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여직원이 많은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여성 이모씨(34)는 “여성 개인에게만 육아부담을 지우는 사회에서 기업이 그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며 “그 때문에 경쟁력에 차질을 빚는 기업이 남성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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