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똥박사예요.”
잠시 학생들이 멈칫하며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하는 눈치다. 첨단을 달리는 연구원에서 온 과학자가 느닷없이 ‘똥’ 얘기를 꺼냈으니 그럴 만하다. 기회를 놓칠세라 똥을 비롯한 각종 생활폐수로 오염되고 있는 환경,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그간의 에피소드를 꺼내 놓는다. 학생들의 눈빛이 진지해진다. 짜릿한 감동이 강사인 내게 전해져 온다. ‘과학기술 앰배서더(홍보대사)’로서 고등학교를 찾을 때의 장면이다.
과학기술부의 지원 아래 한국에서 처음 ‘과학기술 앰배서더’가 생긴 게 만 2년. 미래를 이끌고 갈 청소년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희망을 제시하고 이공계 진출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 연구 현장의 과학자들이 직접 전국의 초중고교와 지역단체에 가서 ‘재미있는 과학강연’을 하기로 한 것이 지금은 튼튼하게 자리를 잡았다.
2002년 9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1000여명의 앰배서더가 선정됐고 전국적으로 700여차례의 강연이 이뤄졌다. 작지 않은 규모다. 과학기술에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좋은 기회였기에 강연에 대한 평도 좋다. 강연을 마치고 학생들이 수많은 질문을 쏟아낼 때면 좋은 연구논문을 발표한 것 못지않게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우선 과학자와 일반인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중 강연’. 솔직히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내 강연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는 쉽게 표현했지만 학생들은 ‘너무 어렵다’고 반응했다. 또 학생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이미지를 로봇이나 인공위성, 또는 반도체가 전부인 것으로 그리고 있었다. 내가 전공하는 미생물이니 환경이니 하는 말은 전혀 새로운 분야로 들린 듯했다.
영국은 우리보다 한 해 앞서 앰배서더 제도를 시행해 6000여명의 과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내용도 우리보다 ‘입체적’이란 느낌이다. 학교에 찾아가 강연하는 것은 물론 과학 동아리를 지도하거나 자신이 속한 연구소에 데려와 견학시키는 일도 많다. 전국 53개 지부를 거점으로, 지역별로 자체적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앰배서더도 강연 내용을 좀 더 입체적으로 꾸미고 눈높이를 최대한 낮추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앰배서더 개인들의 의지만으로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연구시간을 쪼개는 일이 부담스럽다. 만일 앰배서더가 속한 연구소나 대학에서 활동 내용을 또 하나의 ‘연구성과’로 인정해 주면서 적극 독려한다면 좀 더 힘을 내서 미래 과학도들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우리 앰배서더 제도도 그동안 어느 정도 터를 잡은 만큼 기대가 더 크다. 이 제도가 지금보다 양과 질에서 더욱 성숙해진다면 머지않아 과학자와 일반인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솔직하게 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 믿는다.
박완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환경연구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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