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8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 입력 2004년 9월 17일 18시 23분


고래 싸움에 등 터지기 바쁜 작은 새우조차도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는 ‘무위(無爲)의 나라’. 미얀마(옛 버마)는 그런 나라다.

국민의 약 90%가 불교를 믿는 불자(佛子)의 나라. 현세의 고통을 보다 나은 내세를 기약하며 참아내는 국민성도 윤회사상에 대한 깊은 믿음에서 나온다.

참는 데는 도가 튼 미얀마인들은 1962년 3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 장군의 1당 독재체제를 26년간 견뎌냈다. 그 결과는 ‘세계 최빈국’의 오명과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엿듣는다’는 비밀 강압 통치뿐이었다.

88년 3월 미얀마 민중은 더 참지 않았다.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시민과 학생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경찰 호송차에 끌려가던 41명이 최루가스에 질식해 숨지자 민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놀란 네윈은 7월 25일 ‘사회주의계획당’ 의장직에서 물러났으나 민심의 불길을 잡지는 못했다. 8월 8일 10만명 이상이 수도 양곤에 운집해 시위를 벌이자 군이 발포했다.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민심은 완전히 돌아섰다. 8월 26일 육사 교관단이 네윈에 대한 군의 불복종을 촉구했다. 9월 16일엔 외무부 직원들이 ‘집권당 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양곤의 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봄날 한때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는 진달래처럼. 9월 18일 밤 소몽 국방장관 겸 참모총장이 군부 쿠데타를 감행했다. 시민들에게도 무차별 발포라는 무자비한 방법을 썼다. 반정부시위대는 9월 20일 ‘시위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년이 다 돼가는 90년 5월. 미얀마에 잠시 봄볕이 비췄다. 가냘픈 몸매에 큰 눈망울을 가진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국민연합(NLD)’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총칼을 앞세워 ‘총선 무효’를 선언했다. 그 후 미얀마의 의회는 ‘무기한 휴회’에 들어갔다. 수지 여사와 함께 미얀마의 자유도 여전히 가택 연금 중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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