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교육평등주의자들의 착각

  • 입력 2004년 9월 17일 18시 37분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평등주의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점은 예견됐던 일이다. 2008학년도부터 적용될 새 입시제도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등급제로 하고 내신 비중을 높이는 등 평등주의적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일부 단체들이 수능시험 폐지를 주장했으나 절충안으로 등급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수능시험에 대한 거부감은 사교육에 의해 수능시험 점수가 좌우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경제력 있는 계층의 자녀들이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명문대에 진학하고 신분세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왜곡된 것이다. 수능시험이 처음 실시된 1993년으로 돌아가 보자.

‘수능시험이 도입되면서 교실이 달라지고 있다. 창의력, 추리력 등 이른바 고등 사고능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수능시험의 등장으로 학생들은 교과서 암기 위주가 아니라 스스로 사고능력을 길러 가는 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해 독서 열풍이 일고 있다. 교사들도 수능시험이 요구하는 방향으로의 수업 전환에 공감하고 있고 학원들은 수강생이 줄면서 비상이 걸렸다. 교육당국은 이런 변화를 학교교육 정상화로 가는 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1993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보고서)

▼새 입시제도로 기회균등 될까▼

수능시험 도입은 사교육 대책의 일환이었다. 당시로선 사교육이 근접할 수 없는 시험을 새로 만든 것이다. 그동안 사교육이 적응력을 발휘해 수능시험을 사교육의 ‘사정권’ 안으로 끌어들인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수능시험이 여전히 학력 측정의 변별력을 갖고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사고력 논리력이 제일 중요하다며 수능시험을 환영했던 교사들이 이제 와서 수능시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교육당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입장 번복이 왜 나왔을까. 교육평등주의가 개입되어 학력 위주의 입시로부터 교육기회 균등을 구현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킨 것이다.

하지만 새 입시제도가 교육평등주의자들의 의도대로 기회 균등에 기여할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들은 몇 가지 착오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주의자들의 ‘전략’은 입시에서 객관적 수치로 드러나는 전형자료는 최대한 비중을 줄이고 주관적 자료로 학생 선발을 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수능시험, 본고사는 객관적 자료이고 면접 논술 자기소개서는 주관적인 것들이다. 대학들로 하여금 수험생의 학력을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기회 균등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새 제도가 유리할까. 대학은 학력 높은 수험생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주관적 요소의 비중을 늘리라고 하면 대학들은 더 편해진다. 주관적 요소는 채점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학력을 반영할 수 있는 재량이 그만큼 넓어지는 것이다. 면접과 논술이 당락을 좌우하는 수시모집에서 강남권 학생의 합격률이 높은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평등주의자들은 반대로 객관적 자료의 비중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편이 낫다. 어차피 입시가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같은 날, 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능시험이 그래도 공평한 방법이다. 면접과 논술에서 고액과외가 더 기승을 부리듯이 주관적 전형에서 사교육이 잘 먹혀들 공산이 크다.

▼수능시험이 오히려 낫다▼

평등주의자들의 또 다른 착각은 대학이 그들 요구대로 순순히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대학이 스스로 원하는 학생을 뽑기로 작정한다면 막을 방법이 있을까. 전교조와 고교등급제 공방을 벌이고 있는 몇몇 대학이 확실한 사례다. 학생 선발의 주도권을 쥔 대학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오히려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인정해 주고 교육기회 균등에 적극 나서라고 압력을 가하는 편이 효과적일지 모른다.

교육 평등을 위해선 가까운 방법이 있다. 정부가 교육여건이 나쁜 지역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다. 청소년 수가 많지 않은 농촌보다는 도시빈민층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교사들도 시위나 사회운동보다는 가난하고 머리 좋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라. 학생들은 그쪽을 더 간절히 원할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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