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삼성그룹 ‘열린 장학금’ 지원대상 2901명 선정

  • 입력 2004년 9월 19일 18시 36분


“여러분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울산의 한 고교 2학년 오모군(17)의 아버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직장을 잃은 뒤 비슷한 처지의 회사 동료들과 설립한 회사마저 2002년 부도 처리돼 전 재산을 날리게 됐다.

오군의 아버지는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졸지에 집을 잃은 6명의 가족은 보증금 700만원에 월세 20만원의 14평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오군의 아버지는 자동판매기 커피값 200원이 부담스러워 좋아하던 커피를 끊었고 대학생인 누나는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학교 밖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오군은 “정신적으로 힘들고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형편이 어렵다고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다”며 “절대로 좌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동아일보와 삼성그룹이 마련한 ‘열린장학금’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2901명의 고교생들은 분기당 30만원가량의 등록금이 버거울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다.

특히 이들 중에는 오군처럼 부모가 갑작스럽게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해 윤택하던 가정이 경제적으로 몰락한 경우가 많아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1학년인 박모양(16)은 요즘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부모에게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지난해 10월까지 박양의 가정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별 걱정 없이 단란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가정형편이 갑자기 기울기 시작했다.

실직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교육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 나갔지만 몸이 허약해 두 달 만에 그만둬야 했다.

박양은 “외국어고는 학비가 일반고보다 많이 들어 부모님의 부담이 컸는데 열린장학금을 받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다리가 불편한 1급 장애인 아버지를 둔 부산의 김모군(17). 김군의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인장을 새기는 일을 해 왔지만 경기불황과 컴퓨터 인장 조각 기술의 등장으로 생계비 마련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수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김군의 아버지가 8000여만원의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해지자 김군은 올해 들어 등록금을 한 번도 내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인 김군의 동생은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치를 것을 고민 중이다.

김군은 “이번에 받게 된 장학금으로 열심히 공부해 나중에 나처럼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열린장학금의 특징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장학금과는 달리 성적이 낮아도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이 대상이며 본인이나 친구 등 주변사람의 추천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경기 오산시의 장모군(17)은 어릴 때 병을 앓아 고교 2학년인데도 학습능력은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버스비가 없어 학교에 못 갈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렵다.

장군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오산시 영락교회 이종원 목사가 장학금을 신청했고 이번에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 목사는 “경기불황으로 어려운 이웃이 너무 많아졌다”며 “이 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중단할 경우 자신은 물론 사회에도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보호관찰소 담당 직원이 수용생활을 하고 있는 청소년 가운데 학업 의지가 있는 모범생 5명을 추천해 지원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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