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전성은]대학, 교육의 질로 승부 걸 때다

  • 입력 2004년 9월 19일 18시 49분


일부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 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공청회에서도 새 대입제도의 내용보다는 고교등급제가 주된 쟁점이 되었다. 고교등급제 논란은 내신 부풀리기 성행으로 고교의 내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실상 존재하고 있는 고교간 학력격차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견해는 각기 다르겠지만 고등학교간에 학력차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학교간 학력차 문제는 현행 평준화 체제 내에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학교간 격차가 있다 하여 그것이 대학입시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논리적 현실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학의 학벌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폐해와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는가. 만약 대학에서 학생 개인의 능력이나 적성보다 출신 고교의 소재지나 명성을 근거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망국적 학벌주의는 고교에까지 확대될 것이다.

학생 선발의 본질은 적성과 학습능력이 있는 학생을 가려 뽑는 것이다. 학생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을 평가하기에 앞서 출신 고교를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우수한 학생을 뽑는 길도,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도 아니다. 더욱이 지금 논란되는 것처럼 특정 지역에 있는 고교에 특혜를 준다면 이는 대학이 사회적 공공성을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다.

이제는 대학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누구를 뽑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이 되는 우수한 학생이란 우선 희망하는 전공분야에 적성이 있고, 흥미를 가진 학생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아무리 높아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강의가 귀에 들리지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더욱이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해당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데에 필요한 사전지식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학생 선발은 이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거의 모든 대학들이 단순히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뽑기에만 급급했던 현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대학이 4년 동안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쳤는지 평가하는 절차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대학들은 학생들의 입학성적을 마치 자신들의 교육성적으로 착각하게 되고, 이것이 점수에 의한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공개되는 대학 경쟁력에 대한 국제비교 보고서를 볼 때면 너무 실망스러운 때가 많다. 국내의 소위 일류대학 중 어느 대학도 세계 100대 대학에 끼지 못한다고 한다.

이제 우리 대학들도 무엇이 문제인지 되돌아 봐야 한다. 고교등급제다 뭐다 하여 점수 몇 점 높은 학생들을 뽑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것인가를 더욱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숫자로 표시된 입학 성적은 지식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학들도 보다 긴 안목을 가지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학교육의 질’에 승부를 걸어야 할 때다.

전성은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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