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광성고 국어교사 조우성씨(56)는 ‘인천학 박사’로 통한다.
인천토박이로서 ‘코뿔소’ 등 3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그는 개항기 이후의 인천 향토사 연구에 25년째 매달려 왔다.
그 결과 ‘간추린 인천사’(1999년) ‘인천은 불타고 있는가’(2001), ‘월미도 이야기’(2002) 등 인천의 향토사를 다룬 3권의 서적을 출간했다.
또 최근엔 인천을 통해 처음 유입된 해외문물을 소재로 근·현대 생활문화사를 정리한 ‘인천이야기 100장면’(310쪽)도 펴냈다.
“‘양탕국’이라고 불리던 커피도 인천 대불호텔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의 일기에 나와 있지요.”
그는 이 책에서 인천의 성냥공장, 팔미도등대 축구경기 등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해외문물이 인천으로 유입된 과정에 얽힌 100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씨의 따르면 국내의 사이다는 1905년 인천에서 처음 탄생했다. ‘인천부사’(仁川府史)에 1905년 중구 신흥동 해광사 인근에 인천탄산이라는 회사가 세워져 미국식 5마력짜리 발동기를 사용해 사이다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대목이 나온다는 것.
또 1916년 발행된 미국 월간지 ‘월드 아웃룩’에는 경인선 철도에 붙은 ‘성인(星印·별표) 샴페인 사이다-인천탄산수제조소’라는 내용의 광고가 실려 있다. 광복 직후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로 시작하는 가칭 ‘사이다 랩’이 회자된 것도 인천 사이다의 유명세가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
그는 국내 최초로 성냥이 생산된 곳도 인천이라고 설명한다. 1905년 러시아 대장성이 발행한 ‘조선에 관한 기록’이라는 보고서에 ‘1886년 제물포에 외국인들의 지휘 하에 성냥공장이 세워졌다’는 대목이 적혀 있다는 것. 일제시대에는 조선 최대의 성냥공장인 인천 인촌(燐寸·성냥)주식회사가 만든 ‘조선표’와 ‘쌍원표’ 성냥이 전국을 휩쓸었다고 한다.
이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조씨가 주말을 다 바쳐가며 국내외 고문헌과 당시 신문 등을 뒤져가며 확인해 낸 것. 책에 함께 실려 있는 사진과 지도, 그림, 포스터 등도 20여년간 직접 수집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수집한 ‘일제시대 신문구독료 영수증’ 등 근대사 자료 70점을 동아일보사 부설 신문박물관(PRESSEUM)에 기증하기도 했다.
조씨는 지역신문 기자로 활동한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개항기 사진 등 340점을 연표와 함께 정리한 ‘20세기 인천 생활문화연표’를 10월에 출간할 계획이다. 또 조만간 인터넷에 가칭 ‘인천역사사진박물관’을 만들어 전 세계에 항구도시 인천의 역사를 홍보하는 등 인천의 참모습과 역사를 찾고 이를 알리는 작업에 계속 매진할 계획이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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