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내 몸 내가 지킨다”… 호신술 강좌-관련용품 불티

  • 입력 2004년 9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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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한모씨(27·여)는 얼마 전 1년 만에 여고 동창모임에 갔다가 오후 10시도 안 돼 집으로 돌아왔다. 한씨는 “대부분 버스나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가려는 분위기였다”며 “호신용 호루라기나 스프레이를 갖고 다니는 친구도 몇 명 있었다”고 말했다.

20, 30대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른바 ‘홍익대 괴담’ ‘서울 서남부 괴담’과 유영철씨 연쇄살인사건 등 지난해 말부터 늦은 밤 홀로 귀가하는 여성들을 상대로 한 흉악범죄와 각종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

올해 대검찰청이 발표한 ‘범죄분석’에 따르면 2002년 발생한 강력범죄(폭력 살인 강도 강간)는 29만3000건으로 전년 대비 14.5% 감소했지만 강간은 9000건으로 오히려 36.5% 증가했다. 강간의 경우 2003년도에는 1만건을 넘어섰다.

▽빨라진 귀가=20일 오후 이화여대의 한 교양과목 수업시간. 전공과 학년이 다양한 이 수업의 정원은 80명. 이들에게 최근 귀가시간이 빨라졌는가를 물어보자 40여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일부 학생은 호신용 스프레이나 호루라기 등의 호신용품도 지니고 있었다. 김모씨(24·경제학과 4년)는 “예전 같으면 졸업반은 도서관에서 밤 12시 무렵까지 공부를 했겠지만 요즘엔 부모님들도 집에 일찍 들어오기를 원하신다”며 “초저녁에 집에 들어가 집 근처 사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늦어질 경우엔 아버지가 마중을 나오신다”고 말했다.

통상 오후 11시가 되면 이화여대 중앙도서관은 썰렁해진다. 500석 규모의 도서관에 남아 있는 학생은 20∼30명 정도로 이들도 기숙사나 학교 인근에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 경비원은 “최근 밤늦게 귀가하는 학생들이 많이 줄었다”며 “두세 명씩 짝을 지어 귀가하거나 아예 차가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호신 열풍=불안한 마음을 호신술로 달래려는 여학생들도 늘어났다. 올해 가을학기 연세대 이화여대 등에 개설된 호신술 과목에는 여학생들의 수강신청이 폭주했다.

이화여대에 개설된 ‘호신의 이론과 실제’는 최대 정원 100명이었지만 꼭 듣고 싶다는 학생이 많아 정원을 10명 더 늘렸다. 연세대의 경우에도 30명이 정원인 ‘호신술’ 신청자가 늘어나 이번 학기에 한 강좌를 추가 개설해 모두 다섯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에서 호신술을 가르치는 김진덕 교수는 “수강신청이 마감되자 따로 전화를 걸어 부탁하는 여학생이 있을 정도로 이번 가을에는 부쩍 수강신청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또 립스틱 크기의 ‘호신용 스프레이’와 핀을 뽑으면 큰 경보음이 울리는 ‘호신용 경보기’가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대부분의 호신용품 판매업체의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늘어난 가운데 문의 전화도 하루 평균 10통이 넘는다. 인터넷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구입한 최모씨(23·여·이화여대 경영학과 3년)는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날엔 어쩔 수 없이 귀가시간이 늦어지는데 이때는 스프레이를 꼭 쥔 채로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집에 간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법학과 이영란(李榮蘭·형법학) 교수는 “여성들의 ‘체감치안’ 지수가 악화되는 것은 대개 성범죄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여성들의 불안감이 민생치안의 주요 기준이므로 여성을 상대로 한 흉악범죄는 더욱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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