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34>세계화의 의미와 전망

  • 입력 2004년 9월 22일 18시 03분


세계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인가. 만약 그렇다면 세계화 수용 여부를 두고 논쟁을 계속하는 한국은 이미 한 걸음 뒤진 것이다. 시장개방과 경제통합을 내세우는 세계화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이번 신아크로폴리스에서는 세계화를 지지하는 가톨릭대 최영종 교수(43·국제관계학과)가 유종현(31·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아스트리드 판넨슈틸(26·독일·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환학생·여), 서형준씨(20·가톨릭대 국제관계학과 2년)와 이야기를 나눴다.

● 선택의 대상이 아닌 세계화

▽최영종 교수=세계화는 자본 생산 노동 판매가 통합되는 과정입니다. 경제와 정치 양 측면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지죠. 세계화의 주역은 미국과 국제제도, 시장입니다. 초국적 자본가들이 시장을 배후조종한다는 의혹을 받습니다만 그들이 국가를 뛰어넘는 조직력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브레튼우즈 체제부터 세계무역기구(WTO)까지 국제 제도들도 세계화를 이끌고 있죠. 미국이 주도해 WTO가 창설됐지만 최근 WTO가 한국이 미국에 무역보복을 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을 정도로 미국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호관계로 만들어지는 세계화 속에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유종현=개방했을 때 해외자본이 한국의 금융시장 기반을 흔드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개방의 단계적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아크로폴리스 참석자들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세계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하는 방법의 문제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왼쪽부터 서형준씨, 최영종 교수, 아스트리드 판넨슈틸, 유종현씨. -원대연기자

▽최 교수=세계화는 규제를 철폐하는 게 아니라 재규정하자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투명성 제고, 정보공개, 회계 관행을 공조하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세계화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평가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화를 평가할 위치에 있는지 의문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어야지요. 금융시장 개방 문제를 따질 때는 자본시장과 금융서비스 부문을 구분해야 합니다. 금융서비스는 실직자가 나오는 등 문제가 크지만, 자본시장의 개방은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이뤄진 측면이 큽니다.

▽서형준=세계화의 전(前) 단계로 지역협정을 먼저 하는 것은 어떨까요?

▽최 교수=지역협정은 개방과 통합이 서로 이익이 된다는 점이 가시화되어야 달성됩니다. 지역통합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이뤄지기 어려워요.

▽서=동아시아의 통합 전망은 어떤가요?

▽최 교수=발전된 민주주의 국가간의 통합은 가능합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일본과 싱가포르가 그렇죠. 다음은 한국과 일본, 한국과 싱가포르 정도겠지요. 중국과 아세안(ASEAN)의 결합 움직임은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자 하는 의도가 큽니다.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 개인에게 더 많은 기회 제공

▽판넨슈틸=한국의 성장에는 세계화도 한몫했을 거예요. 제가 교환학생제도를 통해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세계화의 일면이지요. 세계화를 단순히 시장개방이냐 아니냐로 평가하기보다는 다양한 수준에서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약소국은 희생할 만한 것이 거의 없어요. 반면 주도권을 쥔 강대국은 몇 가지를 희생해도 그것을 대체할 것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소국이 세계화에 참여할 이유가 있을까요.

▽최 교수=약소국 혼자 살아갈 수 있으면 그대로 밖에 있으면 됩니다. 경제통합은 자발적인 거죠.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참여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이익은 매우 거시적인 것임을 정책결정자는 염두에 둬야 합니다.

▽판넨슈틸=그건 올해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동유럽 10개국이 EU에 가입한 사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세계화는 개인적으로 더 많은 기회와 자유를 준다고 생각해요.

▽유=하지만 개인의 이익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어요. 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지, 부정적으로 보는지 생각해 봐야 해요.

▽최 교수=사람들이 자유보다 안전한 직장 같은 개인의 ‘안보’를 더 원하는 건 아닐까요.

▽유=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어요. 세계화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우리를 먼저 보호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죠. 안정적인 진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생각해야 합니다.

▽판넨슈틸=한국은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세계화에 대한 이런 식의 아주 초보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너무 늦지 않았나요.

▽최 교수=우리가 좇아가야 할 ‘글로벌 타임’은 너무나 빨리 움직이는데 우리는 지금 과거를 놓고 논쟁하고 있어요. ‘한국의 시간’과 글로벌 타임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 세계화와 ‘부익부 빈익빈’

▽유=세계화가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 것은 상식입니다. 국가 수준은 몰라도 개인 수준에서는 빈익빈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최 교수=빈익빈 부익부는 세계화 반대론자의 핵심 논거입니다. 세계화가 되면 부자들이 투자할 기회가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들이 더 부자가 되는 건 사실일 수 있지요.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닙니다. 상대적 소득격차가 늘어나지만 세계화가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아니죠.

▽유=그러나 세계화를 통해 심리적 상실감이 발생하는 것은 무시할 수 없어요. 그런 심리적 차이를 감소시키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세계화가 경쟁이라면 앞서가는 것이 중요하지, 끌려 다닐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얘기되는 개혁이나 부정부패 청산도 인위적인 것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정치적 어려움도 국제제도, 시장, 국제적 규범을 따르는 것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세계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창해 2003년)=세계화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팽배한 현실에서 보기 드물게 객관적으로 세계화를 조명. 일본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는 범세계적으로 통합되고 있는 국제체제를 상징하고, 올리브 나무는 이에 대립하는 구시대적 제반 세력들을 상징한다. 양자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모색하자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주제.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음. 신동욱 옮김.

▽세계화와 그 불만 (세종연구원 2002년)=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냈으며,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세계화를 심도 있게 비판. 경제학자로서 세계화가 갖는 잠재적인 장점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것들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경제기구들이 더 투명하고 신중한 정책을 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송철복 옮김.

▽10년 후 한국 (해냄출판사 2004년)=세계의 시간과 한국의 시간 사이의 괴리가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재, 앞으로 이런 추세가 10년 이상 지속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인가? 이 책은 세계화하는 경제현실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날카롭고 흥미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공병호 지음.


정리=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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