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어느 때보다 뒤숭숭하게 보냈다는 서민들이 많다.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과거사 규명이나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 등 어지러운 시국 때문에 영 추석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주부 신지원씨(40)는 “올해 봄과 가을에 대학을 졸업한 조카 네 명이 모두 취직을 못해 차례에 오지 않았다”며 “어른들은 ‘빨리 취직이 돼야 할 텐데 나라가 이 모양이라…’라고 걱정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 의정부의 친정을 찾은 주부 조미애씨(46·서울 영등포구)는 시금치 한 단이 5000원이나 해 사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어머니를 달래야 했다.
27일 오후 경남 사천시의 한 횟집. 40대 중반인 이 지역 모 중학교 졸업생 12명은 동기모임을 하면서 국보법 개폐 등 시국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런 민감한 사안을 화제로 삼다 설전이 벌어진 집도 많았다. 이 때문에 아예 일부 집안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입단속을 하기도 했다.
KBS-미디어 다음의 ‘추석민심 토론게시판’에는 29일 ‘오늘 처갓집 분위기 정말 살벌했음’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슈퍼보드손오공’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이 글에서 “둘째사위가 밥 먹다가 역사바로세우기 등 정부 정책을 칭찬하는 말을 했더니 택시운전을 하는 장인어른이 수저를 놓으시며 ‘집에 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서울에서 대구로 간 김모씨(29·회사원)는 “경기 불황이나 시국 문제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데도 집안 분위기가 성토대회 비슷해 마음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20일 공식 출범한 친노(親盧)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노하우21’ 게시판 등에는 24일 추석 연휴 때 보수적인 지방의 친척과 설전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한 ‘예시문’이 뜨기도 했다.
한편 추석연휴 기간에 가족간 주된 화제를 묻는 미디어다음의 인터넷 투표에서는 29일 응답자 중 45.2%(1720명)가 ‘경기회복’이라고 답했다. 그 다음은 가정경제 문제(20.4%),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13.8%), 수도 이전 논란(11.5%), 친일청산 등 과거사 규명(5.4%), 기타(3.8%)의 순이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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