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치평동 5·18자유공원과 상무역 사이 아파트 담장. 붉은 벽돌담 군데군데에 그림과 글, 사진 등 4500여장이 빼곡히 채워져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색종이에 태극기와 우리나라 지도, 우주선, 로봇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각양각색의 사람 얼굴과 버려진 깡통과 종이학 등이 벽돌담을 수놓고 있다.
삭막하기만 한 벽돌담을 예술이 살아 숨쉬는 전시공간으로 꾸민 것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아이들이다.
이들은 2004 광주비엔날레(9.10∼11.13)가 개막하기 보름 전부터 공공미술 작가팀인 ‘작가그룹 M’과 함께 현장전에 참여했다.
작가들이 이 아파트 벽돌담을 고른 것은 길이가 700여m로 현장 전시 효과가 큰데다 담에 벽돌로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많아 여백을 활용하기 좋은 여건을 갖췄기 때문.작가들은 빈 공간에 작품을 채워 넣기 위해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게 전시 취지를 담은 안내문과 색종이 8000여장을 돌렸다. 처음에는 미술학원 이벤트쯤으로 오해하는 주민도 있었으나 벽돌담 작품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자 참여가 크게 늘었다.
현장 작가들은 주민들이 직접 그린 작은 이야기 그림들을 스티로폼에 붙여 벽돌담 사이사이에 채워 넣었다. 그러면서 멀리서 보면 모자이크 효과가 나도록 하트나 숫자, 교통표시 기호, 음계, 입술 등 모양으로 벽돌담을 꾸몄다.
비엔날레 개막일에 맞춰 ‘걸어서 지하철’이란 현장 전시작품으로 태어난 벽돌담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마음은 뿌듯하기만 하다. 라인동산아파트 이옥주 부녀회장은 “아이들은 벽돌 안의 자기작품을 자랑하는 재미에 빠졌고 주민들도 담벼락을 보며 ‘아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구나’라며 신기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작가인 M조형연구소 이구영 소장은 “무엇보다 비엔날레 공식 행사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자부심이 큰 것 같다”면서 “비엔날레 행사가 끝나면 작품을 철거할 방침이었으나 주민들이 반응이 좋아 전시공간으로 계속 남겨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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