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간 미정이(7)는 “학교가 재미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학교에서 배우는 학과목 대부분이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운 내용이라는 것.
어머니 서모씨(35)는 “유아기가 초등학교의 준비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 것 같다”며 “이것저것 가르친 게 잘못된 것이었는지 혼돈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는 승준이(4)는 오전 8시∼오후 2시 정규과정인 토론 노래수업 외에도 영어 수학 과학 등 요일별 과목수업과 웅변 미술 체육 등 특기수업을 배운다.
어린이집 박모 교사(29)는 “부모들의 요구로 과목이 하나 둘씩 늘기는 했지만 아이 20명당 교사 1명이 배정돼 있는 현행법상 실제로 제대로 가르치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질적 수준을 높여야=이제는 육아시설의 양적 확대 못지않게 질적 수준을 올려달라는 부모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설의 안정성과 교사의 수준향상 등이 주된 요구사항. 특히 전문가들은 영유아 교육내용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아직도 주입식 교육이 많은 데다 학부모들의 잘못된 조기교육열 때문에 영유아가 아예 ‘학생’이 돼 버린 지 오래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황윤옥 사무총장은 “시스템과 교육내용이라는 ‘두 박자’가 잘 맞아야 부모들도 안심하고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검토단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육아교육 현장에서는 연령에 따른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개개인의 특기개발에 주안점을 둔 차별화된 교육이 아니라 나이나 시설에 상관없이 집단위주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특히 “주입식 교육인 학원수업은 장기적으로 아이들에게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육시설 앞에는 정규수업이 끝나는 오후 2시경이면 태권도 영어 발레학원 등의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미취학 아동 대부분은 보통 1, 2개 학원에서 수업을 더 듣고 다시 어린이집에 와 부모님이 데려가기를 기다린다. 아예 전문교사를 채용해 시설 내에서 특강을 하는 곳도 많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002년과 올해 두 차례 실시한 ‘유아의 일상생활과 어머니의 양육태도’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특별과목을 지정해 교육하는 사립유치원은 전체의 90%. 정규과목 대신 특강을 넣는 경우도 65%였다.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이기숙 교수는 “조기교육을 시키는 학부모가 전체의 86%나 된다”며 “대상 연령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며 우려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유희정 연구원은 “영유아 교육의 폐해는 심각하다”며 “인성과 감성계발이 중요한 유아기에 학원식 교육으로 암기력 학습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맡겨도 불안하다=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사는 김모씨(33)는 다섯 살 된 딸의 다리를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지난달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다가 국통이 딸 옆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에 2도 화상을 입은 것.
김씨는 “아이들끼리 뛰어다니다 국통을 밀었다지만 사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어린이집이 원망스럽다”며 울분을 토했다.
두 살과 네 살 난 형제를 놀이방에 보내고 있는 조모씨(35)는 “아이들이 눈병이나 수족구에 걸려오기가 다반사”라며 “도대체 위생관리는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서울 시내 어린이집 24곳의 안전실태를 조사한 결과 1년간 병원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안전사고가 일어난 시설은 거의 대부분인 22곳.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3세 이상 유아의 경우 교사 1명이 아이 20명 이상을 관리하고 있어 일일이 신경을 쓰기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부모들의 보육비 부담률은 높지만 보육시설로서는 운영비 절대액이 부족해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 드물다”고 지적했다.
한국보육교사회 이윤경 공동대표는 “보육시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시설은 열악한 재정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 많다”며 “이는 보육교사의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이어져 결국 교사의 열정을 식게 하고 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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