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茂朱郡 安城面 의회에서는 지난 九월 二십八일 현 면장 ○○○씨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하였는데 면장이 불신임을 받게 된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은 부정사실이 탄로된 때문이라고 한다. △안성초등학교 수축 공사비로 나락 100석을 징수하여 자기의 內從弟 ×××씨에게 청부계약을 하고 공사비를 선불한 지 만 二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를 이행 않고 있어 아동교육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 △八五년도 제2종 土地收穫稅 一백五십八가마니를 부정 부과하였고 또 八六년도에도 불공정하게 부과하여 면민의 비난이 자자한데 또다시 八七년도분 종인(種인·볍씨) 三백二십三가마니를 면민에게 분배해 줄 것을 일반상인에게 고가로 매각하여 七만환을 착복한 사실 △구호양곡 등도 일반 상인에게 매각처분하여 착복한 사실 등.
<동아일보 1954년 10월 15일자에서>
▼비리 얼룩진 50년대 '풀뿌리 민주주의'▼
“자유당 때 시골 면(面)에 인구는 몇이나 됐겠으며, 산업은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때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전국의 자치 면에서 팔아먹은 국공유지가 엄청날 겁니다.”
자유당 시절 경기지역의 면 의원을 지낸 한 인사의 회고다. 1952년 4월 25일 시읍면 의원 선거, 5월 10일 도의원선거를 통해 기초와 광역지방의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된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의 착근에 기여했지만 이처럼 문제도 적지 않았다. 시군구를 기초단체로 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는 시읍면이 기초단체였다. 서울특별시장과 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했고 시읍면장은 해당의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됐다.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으나 정치싸움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시읍면장 선출부터 파행으로 얼룩지기 일쑤였다. 의원 정수 20명이던 경남 마산시 의회의 경우 소속정당간(당시는 기초의원도 정당공천제), 파벌간 대립으로 시장이 1년도 못돼 갈리는 파행이 계속됐다. 시읍면장의 임기는 4년이었으나 단체장 불신임권을 갖고 있던 의회는 툭하면 단체장을 갈아 치웠다. 위 기사에서 보듯 의원들은 단체장의 부정비리를 불신임의 사유로 내세우곤 했지만 의원들의 비리도 그에 못지않았다고 한다.
초기 지자제의 이런 난맥상은 5·16군사정변 후 군사정부가 지방자치제를 폐지하는 빌미가 됐다. 1991년 지방의회에 이어 1995년 단체장 선거가 실시돼 지자제가 완전 부활했다. 풀뿌리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역사적 당위를 알면서도 그 부작용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다. 과연 우리의 지자제는 반세기 전보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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