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校학력차 반영’ 파문]<2>교육현장의 현실

  • 입력 2004년 10월 11일 18시 27분


《9월 서울 강북에서 강남의 한 중학교로 전학한 A군(14)은 며칠 전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서 울상이다. 강북에선 학교 공부만 해도 평균 성적이 90점을 넘어 ‘모범생 대우’를 받았는데 이 학교에서는 평균이 70점대여서 과연 몇 등이나 나올지 걱정이라는 것. 올해 2월 서울 강북의 한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강남의 중학교로 진학한 1학년생 몇 명이 동창모임을 가졌다. 자신들보다 공부를 훨씬 못했던 한 친구가 강북의 중학교에서 반 1등이라는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K군(13)은 “강남에선 열심히 공부해도 10등 안에 들기도 힘들다”며 “친구들은 ‘우리도 강북의 학교에 갔으면 1등 했을 텐데’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최근 고교간 학력 차이를 반영하는 대입 전형 논란이나 고교평준화제도의 효율성 등의 교육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과연 학력차가 얼마나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력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확한 데이터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1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국가수준 교육성취도 평가연구’를 보면 지역별 격차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과목 시험을 실시했다.

연구결과 전 과목에서 중소도시의 학업성취도가 대도시보다 조금 높고, 읍면지역이 가장 낮았다. 수학의 경우 평균이 대도시는 초등 6학년 69.30%, 중3학년 51.74%, 고1학년 41.98%이지만 읍면지역은 초등 6년 62.59%, 중3학년 46.26%, 고1학년 25.38%로 학년이 높아질수록 지역별 격차가 커졌다.

읍면지역에서 더 좋은 교육여건을 찾아 도시로 떠나는 현상처럼 도시 내에서도 경제수준이나 교육여건이 좋은 지역의 성취도가 높다는 주장이다.

서울 세화여고 박범수 교사는 “강남이라고 다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고 지역별로 대학진학 실적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B여고의 한 교사는 “반에서 학습 분위기를 이끌 우수 학생은 특목고나 강남 등으로 빠져나가 성적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1년 5월 한국교육개발원은 ‘평준화정책과 지적 수월성 교육관계 연구’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522개 일반고 학생 10만2262명을 대상으로 고1, 고3 대상의 수능 모의고사를 봤더니 400점 만점에 평준화고의 평균(267.86점)이 비평준화고 평균(252.51)보다 15.35점 높았다.

그러나 상위권(2.28%)을 보면 비평준화고가 평준화고(351.85점)보다 2.78점 높았다. 학력차 반영이 논란이 된 주요 사립대에 이런 경향을 대입해 보면 고교간에 학력 차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대 강태중(姜泰重·교육학) 교수는 “서울도 지역별로 거주자의 특성이 다르다”며 “학교 교육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업성취도에 큰 영향을 주고, 이는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태에서 2008학년도부터 수능 비중을 낮추고 학교생활기록부 반영을 높이는 대입제도를 도입하더라도 대학들이 학생부를 적극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입학처장을 지낸 한 사립대 교수는 “특목고 상위 50% 학생과 보통 학교의 학생부 1등급 학생의 수능 성적을 비교해 보면 학력차가 확연하다”며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눈감고 학생들을 뽑으라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학력차 반영 시정안하면 정원축소등 제재”▼

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참교육학부모회 회원들이 2008년 이후 대입제도안의 전면 개선과 학력차를 입시 전형에 반영한 대학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안철민기자

전국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주요 사립대가 수시모집에서 고교간 학력차를 반영했다는 교육인적자원부 발표와 관련해 다음주 중 전국대학 입학처장 회의와 총장 회의를 잇달아 열고 공식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대교협 이현청(李鉉淸) 사무총장은 11일 “이번 교육부 발표 이후 대학에 대한 불신과 2학기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을 둘러싼 혼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입학처장과 총장들이 공식 입장을 밝히고 해결책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장은 “교육부의 고교등급제 금지 원칙에는 찬성한다”면서도 “대학 의견을 수렴해 교육부에 요구할 것이 있으면 적극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올해 1학기 수시모집에서 고교간 학력차를 반영한 것으로 나타난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에 이날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 한석수 학사지원과장은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개선계획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며 “개선계획서에는 고교별 진학 실적과 수능성적 등이 담긴 참고자료를 전형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도록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선계획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조치가 미흡할 경우 재정지원 감축과 모집정원 감축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대학들이 개선계획서 제출 전에 교육부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과장은 이어 “개선계획은 앞으로 진행될 입시부터 적용되는 것이며 현재 진행 중인 2학기 수시 전형방법 및 전형일정 조정 등은 교육부가 정한 큰 전형일정의 테두리 안에서 대학측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2002년 국가수준 교육성취도 지역별 비교
교과지역초등 6학년중학교 3학년고교 1학년
평균기초학력미달자(%)평균기초학력미달자(%)평균기초학력미달자(%)
국어대도시65.043.950.956.747.017.4
중소도시66.193.849.756.548.388.3
읍면지역62.446.448.225.935.7522.0
사회대도시69.801.651.146.848.099.4
중소도시71.421.650.538.549.758.1
읍면지역68.932.149.026.834.8424.3
수학대도시69.306.351.747.541.9810.3
중소도시68.346.650.837.842.259.9
읍면지역62.5910.446.267.825.3825.3
과학대도시60.605.339.776.147.596.2
중소도시62.794.440.655.748.566.3
읍면지역60.896.239.025.133.0113.7
영어대도시72.851.344.998.741.216.5
중소도시73.451.343.178.639.676.2
읍면지역63.492.338.3811.225.2220.4
자료: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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