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을 개정하든 폐지하든 ‘삭제’가 기정사실화된 불고지죄(제10조)를 보자. 불고지죄는 ‘가족간에도 고발을 강요하는 반인륜적인 규정’이며, 세상에 유례가 없는 악법으로 낙인찍혀 있는 게 작금의 분위기다.
과연 그런가. 인권에 관한 한 가장 앞섰다는 프랑스와 독일이 오히려 우리보다 광범위하게 불고지죄를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독일 형법 제138조는 간첩죄, 외환죄, 간첩 목적의 기밀 탐지, 내란죄 등 국가 안위와 관련된 중대 범죄는 물론 화폐 및 유가증권 위조, 모살, 강도, 공공위험의 죄 등의 예비 또는 실행에 관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지득하고 이를 고지하지 않은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국보법에만 불고지죄가 있다. 형법에 범인은닉죄는 있지만 불고지죄는 없다. 우리는 친족의 경우 불고지죄에 따른 형을 감면할 수 있게 돼 있지만, 독일 형법은 친족이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면책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공동체의 안위보다 인륜의 가치를 우위에 둘 수는 있다. 대가족 전통이 강한 프랑스가 형법에 중요 범죄의 불고지죄를 규정(제434의 1조)하면서 직계 친족 등은 면책(미성년자 학대 등의 죄는 제외)하도록 한 것은 그런 고려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국보법의 불고지죄가 삭제되면 국보법상의 범죄는 물론 형법상의 간첩죄(제98조)나 폭발물사용범죄(제119조) 등에 대한 불고지조차 처벌할 수 없다. 예컨대 간첩이나 테러리스트가 요인 암살 혹은 고속철도 폭파 등을 위해 침투한 사실을 알고 국가기관에 알리는 등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아도 아무 책임이 없다. 이렇게 되면 공동체의 안전에 시민들은 아무 의무도 없는, 철저한 이기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이기적인 개체들의 모래 위에 선 국가나 사회는 결국 사상누각이 아니겠는가.
프랑스와 독일이 불고지죄를 두고 있는 것도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공동체의 존속과 그 구성원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법적 의무를 져야 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경우 국가와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형법 외에도 헌법보호법, 사회단체규제법, 테러방지법 등의 특별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 독일 형법의 위헌(違憲)조직 선전물 반포 금지(제86조)와 범죄의 대가 지급 및 찬양 금지(제140조)는 우리 국보법의 찬양고무죄(제7조)와 대동소이하다. 우리나라는 대법원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확정된 단체도 해산할 수 없고 그 재산을 압수하는 경우도 없으나, 독일 사회단체규제법은 행정관청의 판단만으로도 ‘반국가단체’의 해산 및 재산 압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정치 논란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불고지죄를 비롯한 국보법 조항들이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악법이라는 것인지, 선진국들은 또 어떤지 꼼꼼히 따져보는 태도가 아쉽다.
박광작 성균관대 교수·비교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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