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출신으로 한국 현대 서예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 유희강(柳熙綱·1911∼1976)선생의 둘째 아들 신규씨(57)는 인천시의 ‘문화 마인드’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유씨와 유 선생의 수제자인 원중식씨(64·강원도 고성군)는 유 선생의 작품을 비롯한 인천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전시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 발이 닳도록 뛰었다. 만약 시가 전시 공간 조성에 적극 나서준다면 유 선생의 작품 100여점을 전시하고 상당수는 기증할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시와 구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를 벌였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유씨는 결국 다른 지방으로 발길을 돌리려 하고 있다. 그는 “강원도가 적극적으로 후원해 추진되고 있는 김응현(유희강과 함께 현대 서예계의 거봉으로 인정받는 인물) 선생 서예관에 아버님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인천의 문화적 자산들이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남구 수봉공원 인천문화회관에 보관돼 있던 가요책자 2000여권과 유성기판 2300여장, 레코드판 2만여장 등 한국 가요 자료들이 경기 용인시의 신나라레코드 가요연구소로 옮겨졌다.
이 자료들을 모은 수집가 김점도씨(70)씨가 변변한 전시공간조차 마련해 주지 않고 시간만 끄는 인천시의 문화정책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자료를 용인시로 옮겨 간 것. 김씨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 가요사 박물관을 지어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행정당국과의 눈높이가 너무 달랐다”고 아쉬워했다.
인천에서 4만여점의 야구관련 자료를 모은 한 장애 야구인 역시 시의 무관심으로 결국 그가 원하던 야구사 박물관 자리를 제주도로 정해 최근 자료를 모두 옮겨갔다
시는 이처럼 시민들이 자진해서 모아 놓은 귀중한 문화 자산들은 외면한채 뜬금없이 시의 역사와는 관계 없는 장난감박물관과 생활사박물관 등 테마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에는 영화 ‘실미도’ 세트장을 불법 건축물이라며 경찰에 고발해 세트장이 철거됐다. 시는 뒤늦게 실미도를 영화와 연계한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서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최근 인천발전연구원이 발표한 ‘인천시 문화지표작성 및 조사분석’결과에 따르면 인천의 공연장은 13곳에 불과해 대구와 부산의 28곳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쳤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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