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準적국’으로 인정한 대법 판례 논란

  • 입력 2004년 10월 18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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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후 형법으로도 간첩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근거로 제시한 대법원 판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대법원이 과거 북한을 ‘준적국(準敵國)’으로 인정한 적이 있다”며 “따라서 형법을 보완하면 북한을 준적국으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가당치도 않은 논리”라고 비판한다.

▽간첩 처벌 논란=열린우리당은 간첩행위를 규정한 형법 98조의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를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하여…’로 고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북한뿐 아니라 모든 외국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국보법이 폐지되면 이 조항만으로는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는 처벌할 근거가 없어진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 북한은 ‘내란목적단체’일 뿐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어 “북한을 준적국으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 내용=대법원이 북한을 준적국으로 간주해 간첩죄로 처벌한 판례의 시초는 1959년 7월 18일자 판결.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북한 괴뢰집단은 하나의 불법단체로서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북한이 중공계열에 속함으로써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는 결국 북한과 중공을 위한 간첩행위인 만큼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1983년에도 이 판례를 인용해 “북한 괴뢰집단은 헌법상 반국가적인 불법단체로서 국가로 볼 수 없다”면서도 “간첩죄의 적용에 있어서는 이를 국가에 준해 취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적이 있다.

▽논란=그러나 위의 판결을 근거로 형법 보완을 통해 간첩죄를 처벌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논리상 무리한 측면이 많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중국이 더 이상 적이 아닌 상황에서 중공과 적국 관계일 때의 대법원 판례를 들어 반국가단체 개념을 없애도 된다는 것은 무리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을 ‘중공 계열’로 간주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른 한 법조인은 “당시에는 국보법에 간첩죄가 없어 이같이 판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한인섭 법대 교수는 “형법 간첩죄 관련조항을 ‘외국을 위하여’ 대신에 ‘대한민국에 대항하여’로 대체하는 게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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