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세상에 대한 사나운 공격이었다. 정치인 철학자 기업인 법률가 등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펜 끝에서 풍자와 야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 사회는 그의 소설적 영감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대표작 ‘걸리버 여행기’에서 그는 인간을 매우 비관적으로 그린다. ‘이성이 있는 동물’이 아니라 ‘이성을 가질 수도 있는 동물’이다. 일상에서 대개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이며 동물적인 욕망이 지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였을까. ‘걸리버 여행기’의 발간은 몹시 조심스러웠다. 스위프트는 “세상이 이 소설을 받아들일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출판업자가 감옥에 갇히는 것을 각오할 용기를 갖게 되면 출판해 볼 생각”이라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고 한다. 완성된 원고는 어둠을 틈타 한 출판업자의 문 앞에 던져졌는데 글쓴이는 걸리버의 사촌 리처드 심슨이라고 되어 있었다. 소설을 가로지르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화살을 피하기 위한 간접화법이기도 했다.
소설이 나오자 “인간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야유한 부분은 읽어선 안 된다”는 지탄과 “이 소설 하나만으로 세계 최고 작가라는 명성을 얻는 데 충분하다”는 찬사가 엇갈렸다.
권력자들의 반발로 금서가 되기도 했고 민감한 부분이 삭제된 채 환상적 모험담으로 개작돼 어린이 서가에 꽂혔다.
스위프트는 40여년간 영국 정치에 관해 날카로운 글을 썼기 때문에 정적이 많았다. 말년도 순탄치 않아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 세상을 떠났다.
다시 ‘걸리버 여행기’. 소인국 릴리풋에서 황제는 달걀의 뾰족한 부분을 깨뜨려 껍질을 까지 않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벌을 내리겠다고 엄명을 내린다. ‘왜 큰 부분은 안 되느냐’는 반론도, ‘먹는 게 중요한 것이니 각자 편한 대로 먹자’는 원칙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하들은 구두 굽의 높이에 집착해 싸우고 황제는 낮은 굽 사람에게 치우친 인사정책을 편다.
달걀과 구두 굽을 다른 단어로 바꾸면, 왠지 꽤나 친숙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가.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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