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고로 32명의 꽃다운 생명이 스러졌고, ‘건설 한국’의 명예에 씻지 못할 오점이 남았다. 그로부터 10년, 한강의 다리들은 과연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을까.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을 돌아보며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해 봤다.
▽한강 다리 안전 관리 일단 ‘합격점’=20일 새벽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 차량검문소. 검문소 앞에 ‘40t 이상 운행제한’이라는 큰 표지판이 붙어 있고 4명의 공익근무요원과 초소장이 멀리서 다가오는 컨테이너 차량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차량이 검문소 앞에서 멈추자 초소장이 고무망치로 컨테이너를 서너 번 세게 때렸다. 소리로 컨테이너 안이 꽉 차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 이 차는 컨테이너가 빈 것으로 판명돼 그냥 통과됐다. 하지만 잠시 후 들어온 컨테이너 차량은 짐을 싣고 있어 이동식 저울 위에서 차축 중량을 쟀다.
최완석 초소장(48)은 “성수대교를 지나는 화물차는 대부분 20t급”이라며 “한 달에 서너 대꼴로 40t이 넘는 과적차량을 적발해 되돌려보낸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대 영동대교 북단 차량검문소. 영동대교는 32t 이상의 운행이 제한되는 곳이지만 교량 보강 공사가 진행 중인 관계로 차량 검문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초소 관계자는 “보통 오전 6∼7시, 오후 6∼8시에 과적차량이 3, 4대 정도 다니기 때문에 그 시간대에 집중해 점검한다”고 말했다. 이곳을 포함해 한강 다리 20개에 마련된 검문소는 2교대로 24시간 과적차량을 단속하고 있다.
과적차량 단속뿐만 아니라 취재진이 지난주 전문가들과 함께 20개 한강 다리의 관리 실태를 점검한 결과 당국이 약속했던 안전관리는 대부분 이행되고 있었다.
1995년 시설물안전관리 특별법이 제정된 뒤 서울시는 안전등급제를 비롯해 매일 수시 점검과 연간 2회 정기점검, 격년제 전문기관 점검 및 정밀진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성수대교 사고 당시 도시시설안전관리본부(현 건설안전본부) 팀장으로 사고 수습을 지휘했던 서울시 정동진 도로계획과장은 “성수대교 사고 당시 상당수 한강 다리들은 D급 수준으로 전면 개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보수공사 중인 영동대교를 제외한 나머지 다리는 안전 상태가 우수한 B급 이상”이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과제=현재 서울시내 다리 435개 중 한강 다리 20개는 시가, 나머지는 각 자치구가 관리하고 있다.
건설기술연구원 김병석 박사는 “성수대교 사고 이후 안전관리가 체계화돼 다리 붕괴 사고 위험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하지만 지방 외진 지역의 일부 소형 다리 등에 대해선 좀 더 정밀한 진단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수대교붕괴원인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서울대 장승필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도 “과거에는 페인트칠이 된 다리 용접 부분은 검사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X선 비파괴검사 등 첨단 관리 기법으로 교량을 관리하고 있어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그러나 “장기적으로 교통량 증가 등을 고려해 사회기반시설의 안전 관리 상황을 재점검하고 안전문제에 보다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수대교 붕괴 전후 현황 비교 | ||
붕괴 전(1979∼94) | 성수대교 | 확장 개통 (2004년 9월17일∼) |
2등교 | 등급 | 1등교 |
게르버트러스교 (상판이 매달려 있는 형식) | 다리 형태 | 게르버트러스교 |
왕복 4차로(19.4m) | 차로 | 왕복 8차로(35m) |
1160m | 길이 | 1160m |
11개 | 연결로(램프) | 13개 |
없음 | 지진 대책 | 강도 5에도 견디는 구조 |
32t | 하중용량 | 43t |
10만5000대 | 통행량(1일) | 21만5000대 |
약 116억2000만원 | 공사비용 | 약 1300억원 |
자료:서울시 |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이진한기자 likeday@donga.com
▼성수대교 붕괴 극적생존 권복수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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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다리가 꺼졌을 때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죠.”
권복수씨(53·여·서울 성동구 마장동·사진)는 성수대교가 무너지면서 추락한 16번 시내버스에서 살아남은 2명 중 한명이다.
커피자판기 사업을 하던 권씨는 서울 서초구 교대 앞 자판기의 커피를 보충한 뒤 지하철을 탔다.
“교대역에서 압구정역으로 가던 전동차 객차의 전기가 나가는 거예요. 부모님 아침 식사를 챙겨 드리려면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버스로 갈아탔어요. 운전사 옆 자리에 앉고 버스가 성수대교에 들어섰다 싶었는데, 그후론 기억이 없습니다.”
이 사고로 그는 비장이 파열되고 왼쪽 발목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고 3번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퇴원후엔 보상금 이자로 91세 노모를 간병하며 생활하고 있다.
“얼마 전 성수대교가 확장됐다는 기사를 읽고 다리 앞에 가 봤어요. 하지만 다시는 다리를 건너고 싶지 않아 그냥 돌아섰어요.”
권씨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너무도 많은 걸 잃었다”며 “하지만 당시 피해자들의 희생이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위안하곤 한다”며 씁쓸히 웃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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