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송법 개정안]行訴 승소땐 행정기관서 거부 못한다

  • 입력 2004년 10월 26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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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관이 소송에서 졌을 때 강제로 처분을 하게끔 하는 ‘의무이행소송제’와 행정처분 이전에 처분 금지를 요구할 수 있는 ‘예방적 금지소송제’의 도입이 추진된다.

대법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행정소송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26일 밝혔다.

▽의무이행소송 신설=한모씨(42)는 2003년 1월 한 지방 국립대의 교양수학 전임강사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해 최종 임용예정자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으나 같은 해 6월 “대학 인사위원회가 동의하지 않았다”며 임용을 거부당했다.

한씨는 대학 학장 등을 상대로 교수임용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내 이겼지만 교수로 임용되진 못했다. 소송에서의 승소가 임용을 강제해주지는 않기 때문.

이처럼 행정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민원인이 이기더라도 행정기관이 다른 이유를 들어 다시 거부처분을 하는 사례가 많은 게 현실.

개정안은 행정기관이 패소하면 의무적으로 처분을 하게끔 하는 의무이행소송제를 도입해 행정기관이 의무이행판결에서 부과된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법원에서 강제하도록 했다.

▽예방적 금지소송 신설=정부는 1991년 새만금사업을 개발고시(행정처분)했다. 정부는 1996년 공사를 시작했고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2001년 공사를 본격화했다.

환경단체 등은 이후에야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소송을 냈다. 현행법은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인한 환경오염이나 지역주민에 대한 피해 등을 막기 위한 사전소송제기를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

개정안은 행정기관의 처분이 임박했고, 처분 후에는 회복하기 힘든 손해가 우려될 경우 처분을 금지하도록 하는 소송을 허용하는 ‘예방적 금지소송’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 경우 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있어 엄격한 제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행정소송에도 가처분 도입=불교신자인 고교생 A군은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다니고 있는 기독교 학교에서 B공립학교로의 전학을 신청했다. 그러나 B교는 A군의 전학을 거부했고 이에 A군은 행정소송을 냈다.

현행법에 따르면 A군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대략 1년) 지금의 학교를 계속 다니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어야 한다.

그러나 법 개정으로 가처분신청을 해 받아들여지면 A군은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에도 원하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행정·민사소송간 변경=개정안은 민사소송과 행정소송 중에 어느 쪽이 유리한지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측면을 고려해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는 소송의 종류를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구청의 도로공사로 집에 균열이 생겼을 때 구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는데 “공사 자체가 부적합하다”는 주장이 법원에서 인정되면 선고 전에 행정소송으로 바꿀 수 있다.

▽원고자격 및 소송 대상 넓혀=개정안은 원고 적격자의 범위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을 침해받은 사람’에서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을 지닌 사람’으로 넓혔다.

예를 들어 공무원이 면직처분 취소소송 진행 도중 정년에 도달했다면 현재는 소송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당사자가 명예·신용 회복을 원할 경우 소송을 끝까지 진행할 수 있다.

또 소송의 대상이 ‘처분’에서 포괄적인 ‘행정행위’로 넓혀진다. 가령 경찰에서 수사상 편의를 위해 미행이나 감시를 했다면 앞으로는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물론 이러한 행위가 소송 대상이 되려면 구체적인 사건 연관성이 입증돼야 한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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