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피를 토하고 죽고 싶다"

  • 입력 2004년 10월 27일 14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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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휴가를 끝내고 직장에 복귀했으나 타 부서로 발령 낸 뒤 커피심부름과 설거지만 시키고, 동료들도 왕따를 시켜 죽고 싶습니다.”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13년째 정규 비서직으로 근무하던 김모(32)씨가 지난 9월20일 출산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했을 때 그의 자리는 새 직원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랜 재직 경력과 높은 연봉을 받으니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회사측의 일방적인 인사발령 통보에, 김씨는 “출산 전 자리에서 일하고 싶다”고 재차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는 결국 일선 사업부서의 교육팀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고 고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무능한 남편을 언제까지 먹여살리나”

새 부서에서 김씨에게 배당된 업무는 본래 ‘전통문화가족’ 회원 관리와 회계업무.

그러나 모유를 끊고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겨둔 채 “그래 새로 시작해보자”며 각오를 다잡고 출근한 김씨에게 맡겨진 첫 번째 일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찻집에서의 커피 심부름과 설거지.

김씨는 “출근 첫날부터 정상적인 업무는 주지 않고 계약직원 밑에서 커피판매, 설거지, 은행심부름 등을 하게 했다. 마치 다방 종업원이 된 기분이었다. 나에게 모멸감을 줘서 내발로 나가게 만들려는 회사의 의도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씨가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계속되는 동료들의 왕따.

“무슨 이유에선지 평소 친하던 직원들조차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조직적으로 따돌렸다. 물론 점심도 매일 혼자 먹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15일은 한달에 두 번 전체직원들이 친목도모를 위해 함께 모여 도시락을 먹는 ‘도시락 데이(day)’.

부서장은 이를 모르던 김씨를 제외한 채 다른 직원들의 도시락만을 주문했다.

김씨는 “나가서 혼자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나를 동료 누구도 붙잡지 않았다. 뒤통수가 뜨거워지며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다시 울먹였다.

이후 김씨는 전 직원이 참석하는 공개회의 시간에 "전화를 1분이상 쓰지말아라", "여기 후배들이 너보다 다 일 잘하니까 물어서 잘 배워라", "인사 좀 똑바로 잘해라" 등 부서장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계속되는 모욕과 왕따에 김씨는 “나중에는 부서장이나 동료 직원들만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전화소리에도 놀래고,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무능한 남편을 언제까지 먹여살려야하느냐, 다니기 힘들어 그만 다닌다더니 언제 사표 낼 것이냐’며 상사들이 노골적으로 퇴사를 종용하기도 했다”면서 “끝까지 싸워야하는지 이쯤에서 물러나야하는지 모르겠다. 어쩔 때는 차라리 피를 토하고 죽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최근 문광부와 노동부, 여성부에 ‘부당인사발령 및 부당대우’에 대한 구제신청을 냈다.

끝까지 싸우는 길을 택한 것이다.

“거꾸로 김씨가 직원들을 왕따시켰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측은 김씨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다. 13년간 비서업무만 보면서 생긴 특권의식에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져 생긴 엉터리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재단 민모 이사는 “김씨는 비서직을 계속 원했으나, 회사는 고액 연봉자를 비서직에만 둘 수 없는 형편이라 타 부서로 발령을 냈다”면서 “순환보직의 원칙과 개인별 업무능력, 본인의 희망에 따라 처리한 정당한 인사발령인데 이에 불만을 품고 일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단측은 김씨의 왕따 주장에 대해서도 “오히려 김씨가 전체 직원들을 왕따시켰다”고 반박했다.

김씨의 부서장 박모씨는 “왕따는 절대 없었다. 오히려 김씨는 평소에 말도 없다가 점심때가 되면 직원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나가서 밥을 먹고 들어왔다”면서 “‘도시락 데이’의 경우도 처음에 무심코 김씨의 도시락을 못시켰다가 나중에 추가로 시키려고 했더니 ‘나가서 먹겠다’고 해서 특별히 붙잡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는 찻집의 커피 심부름에 대해서도 “우리 재단 직원이면 누구나 찻집이 바쁠 때 도와주고 있다”면서 “나는 물론 심지어는 재단 이사까지 찻집에서 웨이터 일을 하고 있으며, 직원들도 점심시간 등에 찻집 일을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단측은 퇴사를 종용했다는 김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남편에 대한 얘기는 김씨에게 가정문제로 고생한다고 격려차원에서 건넨 말을 오해한 것이고, 사표 얘기는 이왕 사표를 내려면 윗분에게 인사를 해야 하니까 미리 날짜를 알려달라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재단측은 “김씨가 자신의 부당한 주장을 외부에 알려 재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김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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