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표는 연설 초반부터 “민생이 무너지고 있다”, “민생 파탄으로 분노하는 민심이 폭발 직전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민생에 초점을 맞춘 채 여권의 ‘개혁 어젠다’를 겨냥했다. 또 민생을 외면한 개혁 드라이브는 결국 ‘사이비 개혁’일 뿐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아무 상관도 없는 수도이전이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법안이 어떻게 국정의 우선순위가 될 수 있느냐. 분열과 후퇴를 가져오는 법안이 어떻게 개혁입법이냐”라고 목청을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표는 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 결정으로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법치주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박 대표가 노 대통령을 견제하고, 여권의 이른바 ‘4대 개혁 입법’ 철회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향후 정기국회 운영 전략과 맥이 닿아 있다. 여권이 4대 입법 추진을 위해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몰아갈 경우 이를 ‘사이비 개혁’으로 몰아붙여 정국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다.
박 대표가 이날 연설에서 4대 입법의 위헌성 검토 문제나, 충청권에 대한 지원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 대표는 국정의 3대 우선 순위를 경제와 교육, 안보 분야에 맞췄다. 하지만 분야별 해법은 정부 여당의 구상과는 크게 달랐다. 향후 정국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정부 여당의 재정지출 확대 방침에 대해 “마약과 같이 일시적 효과만 있고 국가재정을 멍들게 할 것”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여권이 국민 재산인 연기금을 주식 및 부동산 투자에 동원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박 대표가 내년도 예산안 심의 원칙을 ‘작은 정부, 경제 살리기, 국민부담 감소’에 둔 것은 여권이 추진 중인 루스벨트 식 ‘뉴딜 정책’에 맞서 레이건식 ‘작은 정부, 큰 시장’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근 논란을 빚은 고교등급제 파문과 관련해 박 대표는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주고 그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안보분야에 대해 그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현 정부 출범 후 손상된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 미국 대선 직후 한미 양국이 ‘한미 신(新)안보선언’을 채택하자고 제안한 것은 그를 위한 대안 제시인 셈이다.
여야 대표 연설 비교 | ||
|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 |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
수도 이전 및 헌재의 위헌 결정 | -헌재 결정으로 국회 입법권 침해. 이를 둘러싼 논란은 사회의 건강성 반영 -수도권 과밀 해소 등 국토균형발전 일관되게 추진 | -정부여당의 헌재 결정 전적 수용 및 논쟁 중단 -국회에 ‘국가균형발전과 지방살리기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원점 재검토 |
열린우리당의 4대 입법 | -문명국가로서 부끄럽지 않은 인권 수준을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 형법 보완 -언론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언론관계법 개정 추진 -왜곡된 과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학교 운영의 투명성 제고 위한 것 -‘민생·개혁입법 원탁회의’ 구성 | -4대 법안 철회 촉구 -국보법 폐지 추진하면 투쟁의 선봉 불사 -신문법안은 공정거래법 무시하며 일부 신문에 대해 핍박을 가하겠다는 것 -과거사 조사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서 공정하게 조사해야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학교를 이념 교육의 장으로 몰아가려는 것 |
경제 정책 | -추가 재정 확대 적극 고려. 정부 제출 예산 규모 확대 -연기금의 SOC 투자 추진 -민간투자법, 기금관리기본법 개정 -유류세 탄력적 적용 및 중소기업 정책자금 금리 인하 | -재정 지출 확대 반대 -고성장 정책으로의 전환 필요 -국가건전재정법 제정 -연기금 투자 확대 반대 -유가 안정시까지 유류세 인하,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의 소득세 3년간 면제 추진 |
남북 관계 | -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 -남북 화해, 협력은 한반도 번영 및 동북아물류중심국가 도약을 위한 것 | -남북 정상회담은 필요하나 북핵 해결과 안보 불안 해소를 위한 실질적 회담이 돼야 -미 대선 후 ‘한미 신 안보선언’ 채택해야 |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한나라 소장파 “정부참칭 삭제 적극 검토”
원희룡(元喜龍) 정병국(鄭柄國) 의원 등 한나라당 내 소장파 모임인 ‘수요조찬모임’은 27일 회동을 갖고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와 관련해 논란의 핵심인 정부 참칭 항목 삭제를 포함한 국보법의 대폭 개정을 추진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 모임 소속인 김기현(金起炫) 의원은 “안보에 위협이 없다면 국보법 2조의 반국가단체 조항 중 정부 참칭 항목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조직이나 결사체를 처벌하는 내용만 갖춰진다면 (참칭 항목을) 꼭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대체로 많았다”고 전했다. 수요모임은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별도의 국보법 개정안을 마련해 당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 내 영남권 보수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자유포럼’ 등은 아직 참칭 항목 삭제에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이어서 당론 조율 과정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박근혜 대표가 지난달 본보와의 인터뷰 등에서 참칭 항목 삭제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국보법의 핵심을 빼면 실질적으로 폐지하자는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이규택(李揆澤)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김기춘 홍준표 고진화 나경원 이방호 장윤석 의원 등이 참여한 ‘국보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당의 국보법 개정안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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