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물 4000여종 가운데 1800여종이 자라고 있는 ‘식물의 보고(寶庫)’ 한라산에 제주조릿대가 우후죽순격으로 번지고 있다.
26일 한라산 어리목 등반코스의 사제비동산(1400m). 초원이 넓게 펼쳐진 이곳은 희귀식물과 특산식물의 보고인 아고산(亞高山)지대가 시작되는 곳이다.
하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관목과 억새풀을 제외하고는 온통 제주조릿대로 뒤덮여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 검정겨이삭, 김의털, 산철쭉, 털진달래 군락이 보이기는 했으나 제주조릿대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정상 부근으로 올라갈수록 제주조릿대 군락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한라산국립공원 부설 한라산연구소는 제주조릿대의 확산으로 한라산 생태계가 위기를 맞게 되자 2002년 9월 해발 600m에서 1800m 지역의 침엽수림, 활엽수림, 아고산대 등 7개 지역을 선정해 본격적으로 제주조릿대 연구에 착수했다.
한라산연구소에 따르면 7개 조사지역 중 일부 지역에서는 제주조릿대가 침입하면서 한라산의 대표 특산식물로 땅바닥에 붙어 자라는 시로미 군락지가 자취를 감춘 것으로 나타났다.
시로미 군락지에서는 눈개쑥부쟁이, 섬바위장대, 한라고들빼기, 한라구절초, 구름미나리아재비 등 26종이 자라고 있었으나 제주조릿대가 침입한 지역에서는 이들 식물을 한 종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제주조릿대는 20여년 전 해발 600∼1400m에서 자생했으나 지금은 해발 400∼1800m까지 영역을 확장해 암석지대와 계곡을 뺀 모든 지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제주조릿대가 백록담까지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연구소측의 예상이다.
이처럼 제주조릿대가 번성한 이유로는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진 데다 제주조릿대의 잎을 먹어치우던 소와 말의 방목이 1980년대 중반부터 금지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연구소 고정군(高禎君) 책임연구원은 “제주조릿대에 대한 생리 생태학적 연구를 거쳐 한라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할 것”이라며 “멸종위기 식물인 경우 유전자 보존을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제주조릿대가 다른 식물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토양 침식과 유출을 방지하는 순기능도 갖고 있다”며 “대규모 벌채 등 인위적인 개입은 오히려 생태계에 혼란을 가져 올 수 있으므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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