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등∼2만4000등이 ‘공동 1위’라니

  • 입력 2004년 10월 28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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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등급제’와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이 확정 발표됐다. 전체적인 내용은 두 달 전 시안(試案) 발표 때 담겨 있던 것과 거의 같다. 수능시험 비중을 줄이고 내신 중심으로 입시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 입시안은 내신의 문제점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 2000개 고교는 학생 수와 특성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내신을 일률적인 입시 기준으로 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불안한 제도라면 왜 입시 방식을 바꿔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내신을 상대평가로 바꿔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게 교육 당국의 복안이지만 상대평가도 고교간 학력차를 반영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평준화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탄생된 특수목적고, 자립형 사립고와 비평준화지역의 우수 고교 재학생들은 앉은자리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 가장 큰 관건인 ‘내신 부풀리기’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수능시험 등급제는 ‘학력 저하 현상’을 더 확산시키고 국가경쟁력을 해치는 일이다. 수능시험 1등급을 상위 4%로 잡은 것은 1등에서 2만4000등까지를 ‘공동 1위’로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수능시험에선 같은 1등급이라고 해도 400점 만점에 원점수 기준으로 50∼60점의 큰 점수차가 있었다.

이들을 똑같다고 간주하는 것은 입시가 지향해야 할 공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수능 등급제 아래서는 상위권 학생의 경우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인재가 곧 국력인 시대에 국가가 우수 학생의 학력 경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새 입시안은 교육의 평등성에 초점을 맞추느라 입시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이름뿐인 자율권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율권을 대학에 부여해 수험생의 실력을 가려낼 수 있는 다른 길을 터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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