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경미]그래도 대학이 뽑아야한다

  • 입력 2004년 11월 1일 18시 13분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 변천사를 정리하면 대하소설 분량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러나 냉소적으로 본다면 입시제도의 변천은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것’이 아닌 단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온 과정이었다.

솔직히 입시제도에는 특효약이 없어 보인다. 어떤 조치를 취해도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비법(非法)과 부작용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생각하면 오락실의 두더지잡기 게임이 생각난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방안을 내놓으면 그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마치 튀어나와 있는 두더지를 때리면 그 반동으로 또 다른 두더지가 튀어 오르는 것과 유사하다.

2008학년도 입시제도 개선안의 요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실려 있던 무게 중심의 일부를 내신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교육의 영향력을 극소화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내신 비중 강화로 방향을 잡고, 내신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상대평가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 절대평가를 도입한 이유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의 ‘수우미양가’ 평어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학습자가 교육 목표를 달성한 정도에 따라 평어를 매긴다는 원칙대로라면 학력 수준이 높은 학교에서는 ‘수’의 비율이 높고 수준이 낮은 학교에서는 ‘수’를 받는 학생의 수가 적어야 한다.

그러나 절대평가가 도입되자 각 학교에서는 ‘내신 관리’를 위해 극히 쉬운 문제를 출제했고, 만점자가 속출했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집단 내에서 서열을 매기는 상대평가는 ‘너의 실패는 곧 나의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동료들 간의 소모적인 경쟁을 유발시키기 때문에 미리 설정해 놓은 목표 달성도를 측정하는 절대평가가 훨씬 더 교육적이다. 하지만 성적 부풀리기와 그로 인한 내신 변별력의 무력화는 절대평가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고교등급제는 더 우수하다고 판단되는 특수목적고와 강남권 학생을 뽑고 싶은 대학의 안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 방향의 사고도 가능하다. 학생 선발시 좋은 여건 속에서 교육을 받아 자신의 능력을 십분 개발해 온 학생들보다 교육의 수혜 기회가 풍부하지 못한 지역의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주식 투자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저평가주를 사는 것이다. 실제 가치에 비해 값이 낮은 주식을 사는 것이 유리한 것처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학생을 선발해 교육시키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두더지잡기 게임에서 한 번에 모든 두더지를 잡을 수 없듯이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입시제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평가주를 사든 저평가주를 사든 현재 발현된 능력 수준을 중시하든 미래의 잠재력과 발전가능성을 중시하든 선발의 전권을 대학에 위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가르칠 학생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뽑을 권한은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이 가져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나 차선이 불가능하다는 입시제도에서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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