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11월 셋째주

  • 입력 2004년 11월 14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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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으로 상징되는 퇴폐문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1950년대 중반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댄스홀의 모습.-‘서울 20세기 100년의 사진기록’ 자료사진
춤바람으로 상징되는 퇴폐문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1950년대 중반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댄스홀의 모습.-‘서울 20세기 100년의 사진기록’ 자료사진
▼端雅한 ‘몸’차림 하도록…李 大統領, 婦女子 生活態度에 言及▼

李 대통령은 十六일 우리나라 부녀자의 생활태도에 언급하여 혼란된 환경하에서라도 단아(端雅)한 몸가짐을 가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미풍을 살려야 한다는 요지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전란 이후로 부녀들 중에 조신(操身)해서 단아한 태도와 언사를 지키지 못하고 길에서 물건을 사거나 파는 데 있어서나 또는 타인들과 접대하는 데 있어서 상스러운 언사와 막된 사람들의 언사를 보이며 음성이 높고 행동이 무례해서 남이 보면 예의 없는 사람으로 알게 되니 우리 부녀 전체에도 좋은 명예를 주기 어려우니 여태(女態)를 많이 보유해서 미개한 사람들의 태도를 아무쪼록 벗어나야 할 것이다.”<동아일보 1954년 11월 17일자에서>

▼여인들 몸가짐까지 관여했던 ‘家父長 대통령’▼

나라 전체가 전후 복구에 정신없던 시절, 이승만 대통령은 이례적인 담화문을 발표한다. 부녀자들에게 ‘여자다운 태도’를 갖추도록 당부하는….

아마도 전후의 ‘신풍속도’가 배경이었던 것 같다. 교수 부인의 춤바람을 다룬 소설 ‘자유부인’(1954년), 댄스홀을 들락거리며 여대생 등 70여명의 여성을 농락한 박인수 엽색행각(1955년) 등이 사회문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오죽했으면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말이 유행했을까.

전쟁 직후 여성들이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생활전선에 직접 나서는 일이 늘면서 낯 뜨거운 각종 부산물이 생겨나고, 그런 사건들이 마침내 ‘가부장(家父長)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행동거지까지 챙기는 대통령의 행태에서 유교적 권위와 민주적 리더십이 혼재된 건국 초기의 과도기적 정치상황도 엿보인다.

‘조신’ ‘여태’ 등 담화에 사용된 용어들만 봐도 가부장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 않는가. 오늘날 여성계의 입장에서 보면, 상스러운 말이나 무례한 행동에서는 남자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대통령이 부녀자들의 태도만 문제 삼았느냐고 항의할 법하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지도자였지만 당시 국민에게 대통령은 군주나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여전했다.

이런 유교적 권위주의는 그 뒤에도 한국정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 때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법의 지배’보다 ‘사람의 지배’로 흐르곤 하는 대통령의 권력독점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내면화되지 못한 ‘민주적 리더십’의 이면은 그런 것인가.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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