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헬스]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알츠하이머병

  • 입력 2004년 11월 21일 16시 59분


“누구세요?”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기억마저 잃어가는 젊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소재로 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한 장면. 그러나 애처로운 기억상실로만 그려진 영화와는 달리 사람의 정신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세는 훨씬 비참하다.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누구세요?”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기억마저 잃어가는 젊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소재로 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한 장면. 그러나 애처로운 기억상실로만 그려진 영화와는 달리 사람의 정신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세는 훨씬 비참하다.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스물일곱 곱디고운 아내. 유일한 단점은 건망증이다. 도시락에 반찬을 잊고 밥만 싸주기도 하지만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내는 집에 오는 길까지 잊어 버렸다.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은 아내에게 내려진 판정은 알츠하이머병. 아내는 치매였다.

초겨울 찬바람을 타고 멜로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다. 익숙한 ‘불치병 러브스토리’에 백혈병 대신 끼워진 알츠하이머병. 기억을 잃으며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은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런데 정말 20대도 치매에 걸릴까.

▽젊은 알츠하이머 환자?=제작사측은 “29세 여성의 실화를 소재로 한 일본 TV드라마가 모티프”라고 설명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이상 단백질이 대뇌에 쌓이면서 뇌세포가 죽어 인지기능이 사라지는 병이다. 전체 치매 원인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65세 이상 노인의 10% 이상이 앓는 흔한 질병이다. 30∼50대는 전체 환자의 10% 이하. 20, 30대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원인 유전자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서서히 죽어가는 환자를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화장실 가고 옷 입고 밥 먹는 법까지 잊어가다가 결국 폐렴, 욕창 등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기억상실증과는 다르다=알츠하이머병은 기억력만 잃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정신을 통째로 지운다. 그림을 그리고 또렷이 말을 하는 영화 속 수진(손예진)의 모습은 상당히 과장되고 미화된 것.

병이 진행되면 환청과 환각이 생기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져 자주 발작을 일으킨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외부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 것도 비참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병의 진행 속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짧게는 2년, 길게는 20년 이상 생존한다. 우리나라에는 최소한 18만명 이상의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움말=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오병훈 교수,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재홍 교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김도관 교수)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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