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1兆기술 샐뻔했다

  • 입력 2004년 12월 5일 18시 19분


막대한 연구비를 들여 개발한 첨단기술을 경쟁국가로 유출하려던 국내 유명 기업 직원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검찰은 이들을 스카우트하려던 대만 기업의 임원을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부장 이득홍·李得洪)는 6세대 초박막 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컬러필터의 공정기술을 빼내 대만 A반도체사에 입사하려 한 혐의(부정경쟁방지법 위반)로 5일 국내 유명 LCD제조업체인 C 사 전 직원 유모(36), 김모 씨(32) 등 2명을 구속기소하고 김모 씨(34)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유 씨 등에게 전직(轉職)을 제안한 차모 씨(44)를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국내에 들어와 유 씨 등과 스카우트 협상을 했던 대만 A 사 임원인 주모 씨(대만인)를 피의자 자격으로 조사하기 위해 출두를 통보했다.

▽억대 연봉에 승용차, 주택 제공=“대만 타이난(臺南)시에 6세대 LCD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는데 공장장급부터 엔지니어까지 LCD 전문가 5, 6명을 구해 달라. 연봉은 1인당 2억 원 수준이다.”

LCD 부품용 컬러필터 제조업체인 대만 A 사는 자신들이 투자한 국내 B벤처회사 사장 차 씨에게 6월 이같이 부탁했다. 주주회사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차 씨는 이전에 근무했던 C 사의 과장 유 씨에게 이 제안을 전했다.

8월 대만의 A 사 본사를 방문해 전직 조건 등을 협상한 유 씨는 ‘연봉 2억 원에 주택과 승용차 제공’을 조건으로 내걸어 함께 전직할 C 사 연구원 2명을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중 구속된 연구원 김 씨는 8월 말 회사 컴퓨터에 접속해 영업비밀인 4∼6세대 LCD 제조기술을 외장형 하드디스크에 복사했다.

9월경 퇴사한 이들은 11월 초 대만으로의 출국을 앞두고 학원에서 함께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등 출국 준비를 했지만 출국하기 직전 국가정보원의 제보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검찰에 꼬리가 잡혔다.

검찰은 이들이 빼낸 자료를 모두 압수했으며 기술 유출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잇따르는 기술 유출=검찰은 이와 별개로 의약품 제조업체의 항생제 관련 기술을 중국 업체에 e메일로 유출한 혐의로 이날 모 의약품 제조업체 직원 김모 씨(46)를 구속기소하고 이모 씨(47)를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올해 1∼7월 e메일을 이용해 20차례에 걸쳐 항생제 완제품 전 단계 물질인 항생제 중간체의 제조기술을 중국 회사로 넘기면서 4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또 올해 5월에는 부인 명의로 국내에 관련 회사를 설립한 뒤 8월까지 기술을 넘긴 중국 회사로부터 3억 원 상당의 항생제 중간체를 수입해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항생제 중간체 제조기술의 유출로 중국에서 저가제품이 역수입됨에 따라 수출 손실은 250만 달러에 이르고 국내 판매 손실도 수십억 원이나 되는 것으로 검찰은 추정했다.

▼6세대 TFT-LCD 컬러필터▼

휴대전화, 컴퓨터 모니터, 대형 TV에 쓰이는 TFT-LCD의 가장 바깥에 있는 부분을 컬러필터(Color Filter)라고 한다. 6세대 컬러필터는 가로 세로 1.5m×1.85m 크기로 기술 유출을 시도한 대만 회사가 생산하는 4세대 컬러필터(68cm×88cm)에 비해 4.5배 이상 커 정밀도와 균일도 등에서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연구개발비만 3700억 원이 투입됐고 1조 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있으며 국내 기술이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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