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서현]사형장은 없는게 낫다

  • 입력 2004년 12월 7일 18시 21분


사적 제324호. 1923년에 지어진 단층목조 건물. 방문객들은 공원 후미진 구석의 이 작은 건물 앞에서 말을 잊는다. 이 압도적인 절대침묵의 공간은 분노, 회한, 절규로 가득한 과거를 덮고 있다. 이 건물은 사형장이었다.

독립공원으로 바뀐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 이 건물이 건축가에게 더욱 비감한 것은 건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건축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존재한다. 건물이 일상의 소비재가 아니고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적 환경이라는 가치관이 건축을 의미 있게 한다.

▼설득력 부족한 범죄예방효과▼

그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이면서 다음 세대에 대한 역사적 책임의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물로서 사형장은 이에 대한 극단적인 반론이다. 사형은 인간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담는 건축의 의미는 무엇인가. 질문은 건축가에게 남는다.

사형제도 옹호의 가장 직설적인 근거는 복수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또 그렇게 처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 의지에 의해 추동되는 처벌은 이미 근대적 제도화의 설득력을 잃고 있다. 사형제 존치의 줄기는 일반예방론으로 수렴된다. 극형을 통해 잔혹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론은 만만치 않다. 사형제가 잔혹 범죄를 예방한다는 통계적 근거가 있느냐는 것이다. 없다는 추정의 근거가 오히려 많다.

복수 의지와 일반예방론을 기계적으로 확장하면 사형의 방법은 공개처형이어야 한다. 그러나 공개처형을 시행하는 사회의 범죄율이 더 낮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 사회가 얼마나 더 안전한지, 그래서 탈북자들이 줄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다.

사형제 폐지의 가장 큰 논거는 오심의 가능성이다.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예수의 처형일 것이다. 종교적인 판단을 접어둔다면 그 처형은 번제(燔祭)를 요구하는 집단 광기와 정치적 이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그 뒤 2000년 동안 유럽사회에 이어지던 유대인 혐오의 근저에는 예수 처형자의 자손들이라는 적개심이 깔려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이 혐오감이 무려 600만 명의 인간을 처형했다. 역사는 집단 광기의 몸부림으로 휘청거려 왔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인들 다르지 않았다. 북한의 사주를 받아 사회를 어지럽혔다는 ‘조작된’ 죄목으로 대법원 확정판결 하루 만에 8명의 사형이 집행되기도 했다. 역시 북한의 사주를 받아 무려 115명의 민간인이 탑승한 비행기를 이국의 바다에 수장시켰다는 폭파범은 석방되어 평범한 사회구성원이 되었다. 그가 정말 폭파범이었느냐는 질문도, 대답도 모두 허공에 떠돌고 있다. 국제적인 압력으로 사면된 내란음모의 사형수는 몇 년 후에는 바로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생중계 속에 북한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모두 20세기 후반에 벌어진 사건들이었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일들이었다. 이처럼 극단적인 모순의 사회에서 사형제는 위험한 칼날이다. 그때 칼날을 휘두르던 사람들과 칼날을 피한 사람들이 모두 현실의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기묘한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사형제 폐지는 시기상조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접근은 뒤집혀 있다. 사형제의 채택이 시기상조인 것이다. 국회에서부터 저잣거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도 무모한 광기와 적개심으로 가득하다.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하는 인터뷰의 절반은 음성변조와 영상모자이크 뒤에 숨은 음모와 밀고로 뒤숭숭하다. 도시 곳곳에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겠다는 이 사회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리를 배회하면 30일 미만의 구류에 처하겠다던 바로 그 사회다.

▼증오 키운 사회구조 성찰부터▼

분노의 별자리 밑에서 태어나는 저주받은 인생은 없어야 한다. 흉악범이 존재한다면 이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날이 선 작두가 아니다. 그 증오를 키우게 한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이다. 사형제를 채택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사회는 올 것 같지 않다.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물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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