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교사(44·여)가 학생들에게 수능 성적표와 함께 100여 칸이나 되는 성적조사표를 나눠줬다.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영역 등을 2∼4개로 조합해 각자 표준점수 백분위 등을 적고 지망대학의 반영 과목, 내신, 가중치 적용 여부 등을 자세하게 적도록 했다.
“다음 번 상담할 때까지 빈칸을 채워오세요.”(교사)
“아유∼.”(학생들)
“인터넷 책 학원배치표 등 모든 방법을 활용해 유리한 대학을 찾아보세요.”(교사)
수능 성적은 발표됐지만 고3 학생들은 이번 입시부터 ‘선택형 수능’이 도입된 데다 원점수와는 개념이 확 바뀐 표준점수를 받아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엇갈린 희비=이날 오전 일선 고교를 통해 성적표를 받아본 수험생들의 표정은 희비가 엇갈렸다.
특히 사회탐구영역에서 선택 과목에 따라 쉽게 출제된 과목을 본 수험생은 낮은 표준점수에 실망했고 상대적으로 어렵게 나온 과목 응시자들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여학생들이 성적표를 받아들고 울먹이는 바람에 교사와 동료들이 달래주는 모습도 보였다.
윤리 국사 한국지리 등을 선택한 학생의 표준점수와 등급은 예상보다 크게 떨어진 반면 어려웠던 사회문화를 선택한 학생의 성적은 오히려 올랐다.
이화여고 안모 양(18)은 “윤리에서 2개 틀렸는데 4등급”이라며 “한국근현대사도 모의평가 때보다 2, 3개 더 틀렸는데 등급은 ‘바닥’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 휘문고 유종현 군(18)은 “1개 틀린 사회문화의 표준점수는 66점인데 만점을 받은 국사 한국근현대사 경제의 표준점수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서울 경복고 3학년 이종현 군(18)은 “윤리 정치는 만점을 받았지만 표준점수가 61점으로 너무 낮다”며 “선택 과목에 따른 점수 차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수시 예비합격자 비상=윤리 한국지리 생물Ⅰ등 일부 과목은 2등급이 아예 없는 데다언어가 쉽게 출제돼 한두 문제의 실수로 2학기 수시모집에서 최저학력 기준 미달로 떨어지는 학생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실장은 “지역균형선발에 응시한 지방 학생,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 의학계열 등 최상위권, 2등급 기준을 제시한 대학 등에서 탈락자가 꽤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화여고 이모 양(18)은 이화여대 2학기 수시모집에 지원했으나 수능 성적 미달로 불합격됐다.
담임교사는 “언어에서 2등급을 예상했지만 시험이 쉬워 3등급으로 밀렸다”며 “사탐에서도 윤리 한국지리 등 쉬운 과목을 선택해 3, 4등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단국대부속고에서도 생물Ⅰ에서 3점 문제를 틀려 3등급으로 밀려나는 등의 이유로 연세대와 경희대의 2학기 수시에서 조건부 합격한 학생이 일부 떨어졌다.
▽안개 속 진학지도=성적은 발표됐지만 표준점수와 원점수의 차가 예상보다 커 교사와 수험생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경복고 김종우 교사(42)는 “과목별로 고르게 점수가 나와야 하는데 편차가 너무 크다”며 “선택 과목에 따라 학생들의 지원 대학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화여고 김종렬 교사(55)는 “표준점수와 백분위만 제공받는 것이 처음이어서 참고자료가 너무 없다”며 “대학별로 반영 비율, 가산점, 반영 방식 등도 달라 진학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안양고 김명섭 3학년 부장교사는 “최상위권 학생이야 명문대를 지원하면 된다고 하지만 중위권 학생은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태”라며 “자료를 있는 대로 모아 배치표를 만들고 있지만 어느 정도 객관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학부모 이모 씨(49)도 “전형방식이 하도 복잡해 아이의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이 가능한지 파악하기가 힘들다”며 “학원 배치표를 봐도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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