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했는지 온몸을 떨며 쭈뼛대기만 하던 박모세 군(13·삼육재활학교·지체장애 3급)이 복음성가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를 부르자 홍창진 신부(천주교 과천 별양동성당 주임신부)를 비롯한 5명의 심사위원은 말을 잃었다.
‘제대로 눈도 못 맞추고 산만하기만 한 아이가 저렇게 감동적으로 노래를 부르는구나.’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지하 서울예술단 연습실에서는 홍 신부와 탤런트 손현주 씨, 보령 메르디앙 박연우 전무 등이 뜻을 모아 만든 ‘에반젤리 장애우 합창단’의 공개 오디션이 열리고 있었다.
홀트아동복지회 등 장애우 시설에서 소규모의 합창단을 운영하는 경우는 있지만 공개 오디션을 통해 장애우 합창단을 구성하는 것은 에반젤리 합창단이 처음이다.
오디션 대상은 지체장애 3급보다 더 악조건이거나 2개 이상의 장애를 함께 가진 중복장애우로 한정했다. 이날 오디션에는 10∼15세의 남녀 어린이 23명이 참가해 19명이 선발됐다. 장애가 심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어린이도 7명이나 됐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힘든 이들은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기보다 단어를 띄엄띄엄 이어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들이 준비한 노래는 거의 완벽하게 소화했다.
합창단 지휘자 김은나 씨(28·여)는 “이 친구들은 악보를 볼 줄 모르기 때문에 노래를 듣고 외워서 부른다”며 “아마 오늘 부를 노래를 숙지하기 위해 적어도 한 달은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휠체어를 탄 김영환 군(11·삼육재활학교·지체장애1급)은 CCM(기독교 대중가요) 히트곡인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박정현 군(13·경기 안양 부흥중 1년·지체장애2급)은 대중가요 ‘마법의 성’을 불렀다. 인기가수 비의 노래와 ‘앞다리가 쑥∼’ 하는 동요 ‘올챙이와 개구리’를 부른 어린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노래만 잘 부른 것은 아니었다.
홍 신부가 이들 모두에게 던진 하나의 질문은 “(합창단을) 하고 싶은가?”였다. 23명의 아이들은 “꼭 하고 싶어요”라고 똑같이 대답했다.
홍 신부는 “그들의 의지가 가슴에 와 닿았다. 떨어질까 봐 움직임 하나하나에 애쓰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에반젤리 합창단 결성 아이디어는 올해 7월 ‘천주교계의 마당발’인 홍 신부와 탤런트 손 씨, 박 전무, 그리고 지휘자 김 씨가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나왔다. 가톨릭 어린이 합창단을 이끌던 김 씨가 “장애우 합창단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꺼낸 말에 2002년 내한한 일본 장애우 합창단을 기억한 홍 신부가 의기투합했고, 손 씨와 박 전무도 가세했다.
홍 신부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너무 평범해진 지금, 우리 합창단이 좌절하고 기운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에반젤리 합창단은 내년 1월 1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창단식을 가질 예정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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