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상생의 신모델…임금동결 선언 노조 탄생 등

  • 입력 2004년 12월 19일 16시 30분


빨간 머리띠와 격렬한 구호, 파업으로만 각인돼온 노동조합이 변하고 있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자 먼저 임금동결을 선언하는 노조가 생기는가 하면 노조의 투쟁기금으로 모아논 돈을 지역 경제 살리기에 쓰겠다고 나선 노조도 있다.

▽노사 상생의 모델들=휴대전화 제조업체인 팬택 노조는 13일 경기침체와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의원회의를 거쳐 스스로 내년 임금동결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사 측은 "노조가 어려운 결정을 내린 데 대해 경영진으로 부끄럽다"며 "회사가 어려운 간 사실이지만 임금을 동결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10%를 인상해주기로 했다.

또 SK케미칼 노사는 회사가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경영 성과에 따라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률을 사업본부별로 달리 적용키로 하는 데 합의했다.

지난 8월 파업으로 647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받은 LG칼텍스정유 노조는 지난 9일 화합과 협력의 노사 관계를 노조 활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했다.

지난 10월 민주노총을 탈퇴한 LG정유 노조는 △현장관리 철저 △혁신활동 △인사문화 정착 등의 세부 실천 계획도 수립했고, 내년 초 쯤 '무분규 선언'을 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1980년대 '골리앗 투쟁' 등으로 강성 노동운동의 중심에 섰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0월 민주노총과 결별한 데 이어 10년째 계속돼온 무분규로 적립된 '투쟁기금' 100억원 가운데 일부를 지역경제 살리기를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현중 노조는 최근 울산 동구청에 온열 치료기, 안마기, 정수기 등 3500만원 상당의 물품 200여점을 기증했다. 또 관내 소년소녀 가장 40명에게 매달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강성노조로 꼽히는 현대백화점 노조는 연말을 맞아 22일까지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벌이고 있는데 먹을거리, 티켓 판매 행사 등 각종 수익사업을 통해 모아질 3000여만원을 양천구 복지관 등에 기증할 계획이다.

▽왜 변화하나=올 하투(夏鬪) 과정에서 여론의 지지가 없는 파업 위주의 강경한 노동운동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LG정유 노조가 지난 8월 "고임금 근로자들이 왠 파업이냐"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파업을 접은 것이나, 지난 달 전국공무원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가 "신분을 보장받은 공무원들이 어떻게 단체행동권을 요구하며 불법파업을 하느냐"는 비판 속에 백기투항한 것도 실제로 여론의 힘 때문이다.

때문에 앞으로 노조가 사 측과 상생을 모색하고, 노동운동도 장외투쟁에서 장내대화로 변화하는 움직임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는 19일 "지역 봉사활동과 노사 신뢰를 바탕으로 조합원과 회사, 지역 사회가 하나 되는 노동운동 형태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내년에는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실업과 구조조정 문제 등 큰 현안들이 즐비한 만큼 노사가 사회적 임금 안정과 고용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상생의 문화가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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