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2004뉴스]<2>성매매특별법

  • 입력 2004년 12월 20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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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엄한 단속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한 달째였던 10월 23일 서울의 한 집창촌 거리. 단속 나온 경찰관들이 여러 명씩 조를 짜 순찰하는 가운데 텅 빈 업소 내부를 여성 1명이 지키고 있는 풍경이 대조적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삼엄한 단속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한 달째였던 10월 23일 서울의 한 집창촌 거리. 단속 나온 경찰관들이 여러 명씩 조를 짜 순찰하는 가운데 텅 빈 업소 내부를 여성 1명이 지키고 있는 풍경이 대조적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2004년에는 사회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그중 하나가 성매매특별법 도입으로 성매매 자체를 척결해야 할 ‘범죄’로 규정하고 정부가 본격 단속에 나선 것.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보호가 1차적인 목적이었다. 그러나 특별법 시행과 동시에 경찰이 특별 단속에 나서자 졸지에 된서리를 맞은 성매매 관련 종사자들이 시위와 자해로 반발하는 등 맞대결 양상을 보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여성의 인권을 위한 획기적 조치”라는 주장과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이라는 반론 간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법 시행 석 달째를 맞고 있는 성매매특별법의 파장과 논란을 정리해 본다.》

▽달라진 유흥가 풍경=“다른 장사를 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지…. 특별히 갈 곳도 없어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뿐입니다.”

17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 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동대문구 전농동의 속칭 ‘청량리 588’에서 만난 윤락업소 업주 최모 씨(56)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금요일 밤이지만 가끔 차량이 몇 대씩 지나가거나 어쩌다 몇몇 사람이 흘끗 바라보고 바쁘게 지나갈 뿐 예전처럼 업소 앞에서 흥정을 벌이는 풍경은 찾기 어려웠다.

성매매여성 항의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여성단체와 성매매업주들의 대립이 계속 이어졌다. 10월 7일 성매매 종사 여성과 업주 수백 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속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는 장면.-동아일보 자료사진

특별법이 시행된 직후인 9월 말처럼 완전휴무 상태는 아니고 120여 곳의 업소 중 절반가량이 홍등을 켜놓았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록 이들 업소로 들어가는 손님은 보기 힘들었다.

다만 집창촌 외곽인 청량리역 부근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쁜 아가씨 있는데 놀다 가세요”라며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었다. ‘단속에 걸리지 않느냐’고 묻자 “차로 여관 등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아가씨를 소개해 주기 때문에 단속 걱정은 없다”며 꾀었다.

하지만 이들도 “요즘은 이곳을 찾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어 장사가 안 되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집창촌과는 달리 법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는 유사성행위 업소는 오히려 번창하고 있다. 유사성행위 업소란 실제 성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신체의 일부 등을 이용해 유사한 성행위를 하는 곳.

업주 A 씨(34)는 “유사성행위는 법적으로 성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 아니다”며 “특별법 시행 직후에는 우리도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손님이 다시 늘고 있어 업소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달간 성매수 남성 3785명 적발=특별법 시행 이후 두 달 동안 전국에서 6791명의 성매매 사범이 적발됐다.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 행위가 622건으로 가장 많았고 유흥업소 478건, 출장마사지 202건, 다방 172건 등이었다. 집창촌 단속은 113건으로 오히려 많지 않았다. 이 밖에도 퇴폐이발소 62건, 휴게텔 56건, 스포츠마사지 40건, 기타 525건 등이었다.

성매수 남성의 연령은 30대가 1775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20대 1076명, 40대 708명, 50대 173명의 순이었다. 직업별로는 회사원이 1619명으로 가장 많았고 자영업자 740명, 무직 516명 등이었다.

▽경제에 미친 영향=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이 법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도 격렬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삼성증권은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특별법 시행이 내수경기 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도 성매매 종사자를 30만 명 정도로 가정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1.3%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숙박업소 등 관련 산업의 매출이 줄어들면서 금융권도 대출 회수 및 카드연체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성계는 관련 산업의 침체를 특별법의 영향으로 과장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특별법이 내수 위축과 실업률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던 한누리증권 서영수(徐領秀) 수석연구원은 당초 예상만큼 경제에 영향이 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숙박업의 카드연체율이 10%대로 상승하고 있지만 꼭 이 법의 영향이라고 보기 힘들고, 숙박업 이외의 산업에 미친 영향도 미비했으며, 카드 이용실적 등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끝나지 않은 논쟁…시위와 헌법소원까지=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는 15명의 여성이 지난달 1일부터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7명은 50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또 헌법재판소에는 성매매특별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접수돼 현재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헌법소원을 낸 스포츠마사지 업소 업주 김모 씨는 “특별법은 대다수 남성의 기본적 욕구를 억압하고 성매매 종사자들의 직업선택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금주(裵今珠·여) 여성부 성매매방지종합대책총괄 서기관은 “일부 성매매 여성들이 농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안타깝지만 법이 발효되기 전 6개월 동안 공시를 한 상황에서 법 집행유예 같은 것은 타협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또 “전국에 38개의 지원센터가 있고 이 센터에 입소하면 개인생계비 40만 원, 법률지원, 창업 교육과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며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낙관론 펴기엔 빈틈 많았던 法적용▼

9월 23일 전격 시행된 ‘성매매 피해자 보호법’과 ‘성매매 알선 등 처벌법’ 등 통칭 성매매특별법은 연간 24조 원 규모로 성장해 온 뿌리 깊은 성매매산업을 초토화한 직격탄이었다.

그러나 3년이 넘는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의 ‘후폭풍’은 심각했다. 법 시행을 둘러싸고 찬반으로 나뉜 사람들 간에 깊은 갈등 양상을 보였다. 몇몇 지도층 인사는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우려를 표명했다가 여성계와 일부 네티즌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10월 중순에 보도된 ‘성매매특별법 한 달 점검 시리즈’ 등 본보의 관련 기사들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일부 여성계는 “단속을 피하려는 업주의 실태나 음성화 사례, 경제적 악영향 등만을 집중 언급한 ‘딴죽걸기식’ 보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취재 현장에서 접한 성매매 실태는 단순한 낙관론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 문 닫은 집창촌 인근에선 여전히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유흥업소 앞에는 주택가로 은밀히 숨어버린 ‘업소’로 손님을 데려가려는 승합차가 줄지어 대기했다. 또 법 적용의 테두리가 모호해 일선 경찰조차 어느 선까지 단속해야 하는지 헷갈려 했다.

그러나 본보 역시 반성해야 할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초점을 맞춰 상대적으로 깊이 있게 성매매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지 못한 점이나, 찬반의 갈등 속에서 성매매 종사 여성의 진솔한 목소리를 소홀히 한 점 등이 그것이다.

특별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정부의 알맹이 있는 지원정책이 중요하다. 관련단체 역시 견해가 다른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 논의의 장으로 나와 법 시행의 문제점을 차분히 되짚는 성숙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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