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준위 폐기물은 그 위험성 면에서 여느 산업폐기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방사선 위험이 높은 사용후 연료를 제외함으로써 향후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용지 선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수용성이 높아질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과거의 용지 선정 추진 과정을 통해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다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안 없이 부정적인 이미지 부각에만 힘써 온 반핵단체의 네거티브 전략도 큰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원전을 보유한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중저준위 폐기물 시설의 경우 장기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기보다 시설 건립 예정 지역 주민과 구체적인 조건 등을 협의해 타결하고 있다.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용지 선정은 정부가 목표로 하는 ‘공익’과 재산권이라는 ‘사익’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결국 주민의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적법한 절차와 정당한 보상에 대한 명확한 정책 방안이 제시돼야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의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적법 절차의 한 방안으로는 2004년 7월부터 시행된 주민투표법에 의한 주민투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구속력도 없고,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으며, 소지역주의가 불거질 수 있다는 등의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한 찬반이 아니라 보상과 연계한 주민투표는 표류하고 있는 원전수거물관리시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적법절차라는 점에서 적극 고려해야 할 제도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원전수거물관리시설의 용지를 선정한다 해도 보상은 또 다른 문제로 남는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늘날 공공사업에 따른 보상 개념이 기존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손실 보상 차원을 넘어 이른바 ‘생활 보상’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내년 2월부터는 교토의정서가 발효된다. 원자력은 이산화탄소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원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원자력발전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도 원자력발전이 불가피할진대, 정부는 우선 에너지 전반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가며 서구의 경우를 벤치마킹하면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원전수거물관리시설 건설에 따른 시행착오는 서유럽 국가에서도 일반적인 것이었다. 문제는 그 시행착오를 보다 나은 정책으로 가는 발판으로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단계별 공론화와 적법 절차, 합리적 보상 등에 관한 한국적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기한 단국대 교수·환경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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