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출판계에 재정적 위기가 도래하였다. 원인은 일반 구매력의 감소와 전국에 600개소를 헤아리는 소매상으로부터의 대금수집의 부진에 연유한 것이라 한다. 출판협회에서는 지난달 19일 총회를 열고 숙의한 끝에 전국 20개소가량 되는 도매상을 정비하여 ‘單一販賣機構’로 개편하고 본부를 중앙에 두어 동기구로 하여금 전국 출판사에서 발행된 서적을 인수 판매케 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는데 그 예산으로 약 1억 환을 잡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종전까지의 대금미납자는 그 잔액을 중앙본부에 완전히 청산케 함으로써 판매권을 얻게 될 것이라 하는데 이로 말미암아 자금에 부족을 느끼는 군소 소매상들은 자연 도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일보 1954년 12월 28일자에서>
▼붕괴위기 출판계, 공동판매 대책마저 흐지부지▼
6·25전쟁 이전 전국에 40곳가량이던 서점이 1954년 말에는 600곳으로 늘었다. 출판사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들은 비교적 잘 팔린다는 학습 참고서와 일본책 번역판을 대량으로 쏟아냈다. 하지만 단기간의 양적 팽창은 자금 회수 지체와 지나친 판매경쟁으로 인한 할인율 기준 붕괴 등 여러 문제를 낳았다.
전쟁 복구에 허덕이던 시절이니 책을 사는 데 지출할 돈이 많지 않았다. 또 상당수 신규 시장 진입자들은 자본도 빈약하고 운영 경험도 부족했으니 혼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출판협회는 1954년 12월 임시총회를 소집해 판매기구의 일원화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전국 20여 개가량의 서적도매상을 정비해 ‘한국도서신탁공사’라는 단일판매기구로 개편하고 이 공사가 전국 출판사에서 발행된 서적을 인수해 판매하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판매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군소 서점에는 책 공급을 끊는 등 서적 유통을 일신한다는 이 계획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1년 반 동안 단일판매기구 설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1억 환이라는 소요자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일부 출판사와 도매상들이 협조하지 않은 탓이었다.
일제 암흑기를 벗어나 출판 자유를 되찾은 1950년대 당시와는 여러 모로 사정이 다르지만 2004년 올해도 출판업계는 ‘최악’의 불황을 겪었다고 한다. 대형 책도매상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외환위기 때도 소폭이나마 매출이 늘었던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이 개점 23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 감소를 겪었다니 말이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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