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길’ 찾아나선 학교밖 아이들

  • 입력 2005년 1월 4일 17시 46분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디딤돌학교의 미술수업 모습.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디딤돌학교의 미술수업 모습.
《4일 오전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디딤돌학교’.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12명이 40평 남짓한 학교 곳곳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7명은 칸막이가 쳐진 교실 한쪽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고 5명은 다음 달 공연을 앞두고 밴드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곳은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현재 20명이 다니고 있다.》

밴드부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김모 씨(20). 그는 지난해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해로 꼽았다.

김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폭력 혐의로 구속된 소년범 출신. 2년간 복역한 뒤 2001년 학교(고교 2년)로 돌아갔지만 1년여 만에 자신을 꾸짖는 선생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자퇴서를 냈다.

이후 1년여간 자신에게 실망한 부모님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밤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했다. 부모님의 설득으로 디딤돌학교를 찾은 것은 2003년 초.

그는 처음 학교 문을 열었을 때 지금까지 갖고 있던 학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했다. 모두 그를 따뜻하게 맞아줬고 모든 수업은 학생들의 의사와 참여로 이뤄졌다.

그는 지난해 4월 고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도 봤다. 그는 올해 전문대에 들어가 디자인을 전공할 생각이다.

선생님과의 갈등으로 세 번이나 자퇴한 경험이 있는 곽모 씨(19·여). 그는 2003년 9월 디딤돌학교에 왔다. 그 역시 지난해 8월 검정고시에 합격해 올해 수능을 볼 계획이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다는 그는 독일로 유학을 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전혀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떠나는 순간 이들에겐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란 꼬리표가 붙기 때문. 곽 씨는 자퇴학생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달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냥 우리를 정규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똑같이 봐 주세요. 우린 특별하지 않아요. 문제아는 더더욱 아니고요. 그저 차별이 없고 개성을 존중해 주는 이곳이 좋을 뿐이에요.”

대안학교 학생들의 사진 및 작품 발표회 모습.

2003년 중고교생 가운데 중도탈락자는 모두 5만4611명. 전체의 1.5% 정도다. 전문가들은 매년 자퇴학생이 조금씩 줄고 있지만 주된 원인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주된 원인이 경제적 빈곤이었지만 최근엔 학교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2003년 중도탈락자의 36%가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있는 학령기 청소년은 모두 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대안학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대안교육 잡지인 ‘민들레’에 따르면 현재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는 전국에 30여 곳이 있다. 그러나 이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은 중도탈락자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대안학교 입장에선 열악한 교육환경과 부족한 재정 탓에 학생 수를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는 처지다. 순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디딤돌학교만 해도 상근교사 5명 가운데 2명만이 월급을 받고 있다.

서울대 교육연구소 서근원(徐根源) 객원연구원은 “정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대안학교만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끌어안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대안학교를 공교육을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서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학업중단 청소년 지원센터 경기 광주 제주 3곳뿐▼

네덜란드에선 오래전부터 ‘인스텝 프로젝트(Instep Project)’라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업중단 청소년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문제 해결까지의 전 과정에는 청소년복지기관과 사회사업기관, 경찰, 법조계, 교육당국, 의료기관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 체계적으로 개입한다.

한국도 2003년 5월 한국청소년상담원 산하에 이 같은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해밀센터’를 신설했다. 지난해 해밀센터는 경기도와 광주시, 제주도 등 3곳에 지역 해밀센터를 시범 설치했다.

그러나 7개월간 3곳의 해밀센터에서 지원사업을 벌인 학교 밖 청소년은 170여 명에 불과하다. 인력이 부족한 데다 체계적 지원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현재 해밀센터의 담당자는 1곳당 2명. 더욱이 이들은 지역 청소년상담원 업무도 함께 보고 있어 사실상 학교 밖 청소년 업무에만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지적을 감안해 정부는 내년까지 전국 시도에 모두 해밀센터를 설치하고 2007년엔 시군구 단위까지 해밀센터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학업 중단 청소년 현황
구분중학교일반계 고교실업계 고교
구분학업 중단학생수(명)전체 학생대비 중도 탈락률(%)학업 중단학생수(명)전체 학생대비중도탈락률(%)학업 중단학생수(명)전체 학생대비중도탈락률(%)
2000년1만73380.91만65201.23만21884.3
2001년1만90971.01만89211.53만32155.1
2002년1만98421.12만 1661.72만79664.9
2003년1만59870.91만70951.42만15294.0
학업 중단 학생 수는 제적 중퇴자 및 휴학생을 모두 합한 것임. 자료:한국교육개발원

학교 밖 청소년을 돕는 기관 현황
구분연락처인터넷 홈페이지 주소
한국청소년상담원02-730-2000www.kyci.or.kr
광주광역시 해밀센터062-232-2000www.kycc.or.kr
경기도 해밀센터031-237-1318www.hi1318.or.kr
제주도 해밀센터064-746-7179www.doum1004.or.kr
한국 청소년쉼터 협의회1588-0924www.jikimi.or.kr
청소년 아르바이트센터02-578-4104www.youth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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