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9년 히로히토 日王 사망

  • 입력 2005년 1월 6일 18시 31분


1989년 1월 7일 오전 6시 33분, 88세의 한 인간이 호흡을 멈추었다.

아침 출근길 뉴스 진행자의 어조는 엄숙할 정도로 차분했다. 시민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폐하’는 이미 4개월째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히로히토(裕仁·1901∼1989) 일왕. 그는 처음부터 ‘인간’으로 숨을 거둘 운명은 아니었다. 살아있는 신으로서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의 개전을 직접 명령했던 그는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한 뒤 1946년 연두칙서에서 ‘현인신(現人神)’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인간선언’을 해야 했다.

몇몇 나이든 시민이 도쿄 왕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을 뿐, 열도는 대체로 62년 동안이나 자리를 지킨 그의 부재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가 세계를 다시 술렁이게 만든 것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일본 총리의 조의(弔意) 담화 때문이었다. 다케시타 전 총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며 “전화(戰禍)에 시달리는 국민의 모습을 보다 못해 전쟁 종결의 영단을 내렸다”고 그를 찬양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피해국들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일본군에 자국인 2만 명이 희생된 네덜란드는 조문 사절을 보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동아일보 사설을 인용,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가 그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한국의 주장을 소개했다.

과연 그가 많은 일본인들의 주장처럼 군부의 압력에 못 이겨 침략전쟁을 결정했을까. 전쟁 중의 일본 총리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도쿄 전범재판에서 “일왕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에드워드 베르의 책 ‘히로히토’에서 저자는 히로히토 일왕이 군과 정부를, 육군과 해군을 서로 견제시켜 자기 역할을 극대화하는 탁월한 권력가였다고 분석한다.

그는 결국 한국민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일(訪日) 당시 만찬연설에서 그가 “양국간에는 금세기초 불행한 기간이 있었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누가 불행을 초래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언사였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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