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영화 ‘클래식’과 공평아트센터

  • 입력 2005년 1월 7일 17시 46분


서로 좋아하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지혜(손예진)와 상민(조인성). 서울 종로구 공평동 공평아트센터에서 기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걷는다(아래쪽 사진). 상민의 여자친구 수경(이상인)은 자신이 엑스트라임을 깨닫지 못하고 기둥 너머로 지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공평아트센터는 인사동길에서 가장 큰 화랑으로 벽이 없어 널찍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다.전영한 기자
서로 좋아하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지혜(손예진)와 상민(조인성). 서울 종로구 공평동 공평아트센터에서 기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걷는다(아래쪽 사진). 상민의 여자친구 수경(이상인)은 자신이 엑스트라임을 깨닫지 못하고 기둥 너머로 지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공평아트센터는 인사동길에서 가장 큰 화랑으로 벽이 없어 널찍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다.전영한 기자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 다른 누구를 생각했었어.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렸었어 그 사람을.’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고백’의 일부다. 이 노래의 연주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린 가운데 세 남녀가 기둥을 사이에 두고 화랑을 걷는다. 기둥 너머에는 상민(조인성)과 상민의 애인 수경(이상인)이 있고, 이쪽 편에는 수경의 친구 지혜(손예진)가 있다.

지혜는 상민을 짝사랑하지만 수경 때문에 내색하지 못한다. 상민은 지혜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만 역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세 사람은 그저 평행선을 걸어가기만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지혜와 상민은 서로를 흘끗흘끗 훔쳐보며 그때마다 카메라는 기둥 너머 상민의 눈에 초점을 맞췄다가 다시 지혜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멀어졌다 당겨진다.

조인성 조승우 손예진 등 화려한 배우와 세련된 연출, 감성에 호소하는 대사와 시나리오로 관객몰이에 성공한 영화 ‘클래식’(2003년작). 이 영화의 초반부에서 지혜와 상민의 속마음이 그려지는 장면이다.

클래식에는 70년대적 수줍은 낭만과 재기발랄한 현대의 감성이 공존한다. 하지만 두 남녀는 자기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 맘에 두고 있으면서도 퍼뜩 다가서지 못하는 ‘구식 사랑’을 한다. 그런 기질마저 유전되는 것인지….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은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공평아트센터다.

곽재용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부터 미술관을 배경으로 남녀 주인공이 △거리를 뒀지만 나란히 걸을 때 △작중 타자(他者)인 남자 주인공이 방해물(기둥) 때문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며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안 방해자(수경)가 끼어들 수 있는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1991년에 문을 연 공평아트센터는 천장과 벽, 바닥이 모두 흰색이고 할로겐 등이 은은한 조명을 뿌려 무척 고급스러운 분위기. 1층 270평, 2층 150평으로 인사동에 있는 화랑 중 가장 크다는 점도 영화 촬영장소 선정에 고려됐던 점이다. 인사동 나들이를 나가면 인사동길 끝에 있는 이곳을 들러보자.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모두 무료. 매주 수요일 새 전시회를 시작해 다음주 화요일까지 열린다. 현재 열리고 있는 것은 월간미술세계 신년기획전인 ‘현전(現展)’. 한국화, 서양화와 조각, 공예, 사진, 미디어아트전 등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종로타워 방향 출구에서 조계사 방향으로 50m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개관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7시(10일∼2월은 오후 6시)까지, 토·일요일은 오전 10시∼오후 6시(10일∼2월은 오후 5시)까지. 02-733-9512∼4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빗속 질주 장면’ 학교 3곳 짜깁기 촬영▼

영화 ‘클래식’은 부모 세대인 준하(조승우)와 주희(손예진 1인2역)의 비극적 사랑과 자식 세대인 상민과 지혜의 연애담이 한 세대의 격차를 두고 번갈아 진행되는 구성이다.

상민과 지혜가 모두 한 대학교 선후배로 설정돼 있어 대부분의 장면들이 대학교 캠퍼스에서 촬영됐다. 재미있는 것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이야기 모두에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모티브로 한 장면이 있다는 것. 준하와 주희가 갑작스러운 폭우에 쩔쩔 매다 오두막으로 피신하는 장면은 소설 소나기 장면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반면 상민과 지혜의 이야기는 현대적으로 변용돼 있다.

소나기가 퍼붓자 우산이 없어 근처 나무 아래로 들어간 지혜는 상민을 만나고, 두 사람은 상민의 재킷을 함께 덮어쓰고 도서관까지 달린다. 사실 이 ‘빗속 질주’ 장면은 유명 캠퍼스의 명소를 짜깁기해 찍은 것이다. 지혜와 상민이 만나 달리기 시작하는 곳은 전북 익산의 원광대 학생회관 앞이다. 두 사람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연희관 현관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연세대 성암관(영상대학원)으로 들어가고,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경희대 서울캠퍼스의 도서관에서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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