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서현]때론 예술이 도시를 슬프게 한다

  • 입력 2005년 1월 11일 18시 10분


예술이 때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람한 소나무와 굽이치는 폭포 그림의 시대는 갔다. 고철덩이를 조합하여 비엔날레에 당당히 출품하는 시대가 왔다. 멀쩡한 악기를 비틀어 새로운 음색이라며 청중을 혹사시키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게 무슨 예술이냐, 혹시 외설은 아니냐는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예술이 뭐냐는 질문은 미학의 중요한 화두다. 1980년대에는 미학자들의 철학적 고뇌를 경찰서에서 해결해 주었다. 경찰이 나서 이건 미술작품이 아니고 선전 선동 포스터라고 선언하고는 전시물을 거둬 가기도 했다. 이 시대의 미술 관련 업적으로 소위 ‘1퍼센트 법’의 제정도 있었다. 건물을 지을 때 공사비의 1%를 미술품 구입에 쓰라고 문화예술진흥법으로 요구했다.

법률이 요구해서 세워지는 조각들이 대개 우리를 슬프게 했다. 미술계라고 돈에 초월한 우아한 예술가들만 있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예술적 성취보다 가격의 높낮이가 더 중요한 조각이 거리에 세워졌다. 음침한 거래에서 이야기되던 꺾기, 리베이트란 단어가 묻어서 들려 왔다. 경찰이 이제는 예술품 판정이 아니라 뒷거래 조사에 나서야 할 지경이 됐다.

▼‘1%법’으로 세워진 조각들▼

희생자는 도시였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조각들은 도시를 고물 야적장처럼 만들었다. 도시가 왜 이 모양이냐는 지탄의 대상에 건축계에 이어 미술계도 끼어들게 된 것이다. 대안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미술품 직접 구입 대신 기금 납부를 허용하자고 한다. 옳은 방향이다. 모은 기금으로 제대로 된 미술품이 거리에 세워진다면 미술은 분명 도시를 더 아름답게 할 것이다.

바퀴 달린 미술품도 때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자동차 디자인은 기계설계를 넘어 산업디자인 능력의 가늠자다. 자동차는 이동을 돕는 편리한 도구면서 문화의 표현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아래층 이웃에게는 소음이 된다. 달리는 자동차는 보행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정지해 있는 자동차는 도시공간을 압도적으로 점유하는 폭도가 되기도 한다.

주차장법은 건물 용도와 연면적에 따라 주차장 면적을 확보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필지마다 주차장이 들어섰다. 실제로는 자동차를 세워 놓기 어려울 만큼 작은 대지에도 주차장이 들어서곤 한다. 주차가 아니라 허가가 목적인 공간이 주차장 명목으로 마련된다. 이런 주차장은 결국 잡동사니 투기장으로 변하게 된다. 신도시의 단독주택 단지에도 필지별로 만든 주차장이 있다. 이 공간은 거의 모두 알뜰하게 마당으로 전용되었다. 대신 그 앞 도로가 주차장으로 무단 점거된다. 주차장도 주차장설립기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건축주가 원한다면 주차장 설치를 면제하는 대신 기금을 받으면 된다. 블록 별로 주차장을 우선 만들고 그 기금으로 갚아 나가면 된다. 토지 이용 효율이 높은 주차장 건물을 만들고 불법 주차는 확실히 단속해야 한다. 몇 걸음 더 걷는 것은 도시민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도시가 조금이라도 덜 슬퍼지는 길이다.

도시 외부 공간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데 조경도 끼어든다. 건축법에서는 대지의 일정 면적을 조경 공간으로 할애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뜻은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좁은 대지에서 건물, 주차장 앉히고 쓸모없이 남는 자투리땅에 조경 공간의 이름이 붙는다. 그래서 우리 도시에는 온갖 옹색한 화단과 죽은 나무들이 가득하다. 장애물이 빼곡한 쓰레기장이 건물 주위를 둘러싸게 되는 것이다.

▼주차장-조경 기금제 도입을▼

빠듯한 대지에 무조건 조경 공간을 필지별로 마련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자연을 빙자해 도시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일정 규모 이하의 대지에서 건축주가 원하면 조경기금 납부를 통해 이 규정 적용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 그 기금으로 제대로 된 공원을 마련해야 한다.

무책임하게 요구 조건만 만들어 놓고 알아서 이 법을 지키라는 태도 덕에 조각, 주차장, 조경이 마구 버무려져 도시를 어지럽혀 왔다. 이제 법규가 더 이상 도시를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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